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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Mar 27. 2024

산책만 한 게 없다.

아이와 봄에 매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 

Spring! 


설레는 계절 봄이 왔다. 봄엔 왜 설렐까. 봄에는 틈만 나면 밖에서 거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立春)은 2월 4일이었건만 누굴 그렇게 시샘하는지 쌀쌀한 바람은 여전하다. 봄은 모든 기운이 위로 샘솟는 계절이다. 에너지가 안에서 밖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새 생명이 움트는 신비로운 삼라만상 중 하나이다. 그래서 입춘의 한자도 들입(入) 자가 아닌 설립(立) 자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봄을 뜻하는 영어단어도 spring인 게 새삼 재미있게 다가온다. spring (봄)은 원래 돌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콸콸 솟아 나오는 옹달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솟아 나온다'는 뜻을 담아 땅 위로 뚫고 나오는 새싹,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연둣빛 어린 이파리, 겨울잠 자다가 얼음 깨지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오는 개구리가 연상되는 봄을 뜻하는 말 spring으로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기운이 솟아올라서인지 용수철과 그 의미가 매우 닮아있어서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가 싶다. 봄에 자꾸 어디론가 튀어나가고 싶은 마음과도 닮아있다. 




7살 아들은 날이 맑으면 날이 맑아서 나가야 하고, 눈이 오면 눈놀이를 해야 해서 나가야 하고, 비가 오면 우비 입고 찰방찰방하러 나가야 한단다. 온갖 이유를 대며 나가서 탐험을 해야 한다. 7살 아이는 계절로 치면 '봄'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주말 미세먼지 없이 맑고 쾌청한 하늘과 따뜻한 기온으로 나도 아이도 들떠있었다. 반나절 이상 내 친구네 가족과 야외에서 도시락도 먹고 봄의 시간을 만끽했다.  


반나절로 부족했던 탓인지, 집에 와서도 줄넘기, 잡기놀이 등 몸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붉은 노을이 질 때즈음 아이는 산책하자며 또 나가자고 했다. 그동안 안 가본 길로 탐험을 가자기에 우리도 결국 따라나섰다. 봄의 생명 에너지와 더불어 신체나이가 봄인 아이에게는 잠들기 전까지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는다. 지칠 줄을 모른다. 작은 하천이 흐르는 산책로에서 가로등이 그대로 수면 위로 비추는 것을 신기해하며 돌을 던져 가로등을 맞추는 놀이를 했다. 아빠와 엄마의 점프대결을 주관하기도 하고, 큰 돌 작은 돌을 구해달라는 까다로운 요구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함께 걱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산책길에서 뜻밖의 순대국밥 맛집도 알게 되었다. "이쪽으로 쭉 가면 순댓국 파는 데가 나와. 내가 유치원차 타고 가면서 매일 봤거든." 아이 말대로 조금 걸으니 순대국밥 가게가 나왔다. 외진 곳에 있는데 치곤 식당 안에 손님이 꽤 많았다. 검색해 보니 나름 우리 동네 숨은 맛집인 듯해서 다음번 외식은 여기서 해보자며 입을 모았다. 아이는 덤으로 모자를 쓴 카니발 차가 있는 가게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가게를 지나치며 마주한 담벼락에는 개나리가 듬성듬성 피어있었다. 아이는 아직 피지 않은 개나리 꽃봉오리를 가리키며 서로 마주 보며 쌍둥이처럼 생겼다고 알려주었다. 




어느덧 한 시간을 훌쩍 넘게 걷다 보니 '걱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인의 진짜 걱정인 듯 아닌 듯 사소하고도 귀여운 걱정을 마구 토해낸다. 그러면서 '걱정인형'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엄마 아빠는 걱정인형을 담당하란다. 


"너는 지금 무슨 걱정이 있니?"

"나는 잘 때 이불을 잘 안 덮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감기가 걸려있을까 봐 걱정이야."


훗, 이게 걱정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이게 걱정인지, 아니면 상황극 놀이인지 분간이 안되기도 했다.  아이의 걱정을 듣고 엄마 걱정인형은 만세를 한번 하고 입에서 걱정구술을 토해내어 아빠에게 전달하란다. 아빠인형은 그 구슬을 다시 먹고 해결방법을 이야기해 주면 그 걱정은 영원히 사라진다나.  


"이제 날도 많이 풀려서 새벽에 그리 춥지 않아서 감기에 안 걸릴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한 번씩 이불 덮어주니까 괜찮을 거야."


아빠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걱정인형 놀이를 마칠 때 즈음 집에 다다랐다. 아이가 자주 감기에 걸리는 탓에 내가 전전긍긍한 모습을 많이 보인 것은 아닌지,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라고 무심코 했던 말들이 쌓여 아이의 걱정으로 변한 건지, 아니면 재미로 하는 놀이에 진짜 걱정거리가 없어서 지어낸 말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지만 나의 행동을 되짚어보는 짧은 시간도 갖게 되었다.  




걷기의 힘은 강력하면서도 묘하다. 아이 마음속의 말을 줄줄이 사탕처럼 꺼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달까. 원래 알던 이야기, 궁금했던 이야기, 마음속 담아둔 이야기, 상상 이야기 등 걷기만 하면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집에서 인형과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면 제한적인 말과 상황극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산책길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발에 걸리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모두 놀잇감이자 이야기 소재가 된다. 돌을 던져 강물에 비친 가로등 맞추는 놀이를 하며 작은 돌도 커다란 물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는걸 눈으로 본 아이에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도 슬쩍 꺼내며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그간 아이가 줄넘기를 할 때 하고 싶었던 잔소리를 꾹꾹 눌러만 놓았다가 줄넘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슬쩍 아이에게 던져보니 웬일인걸, 아이는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의 조언으로 받아들여준다. 

  

올봄에도 아이와 산책을 자주 하며 아이 마음속에 스프링(spring)처럼 솟아나는 이야기에 흠뻑 취해 봄의 기운을 마음껏 느껴보련다. 싱그러운 봄 산책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엄마 개나리 꽃은 말이야... 열심히 설명해 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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