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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 Feb 15. 2021

옷장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디자인 스튜디오 생존기 #04

작은 소상공인 일에서 큰 규모의 공단 일까지 다양한 일을 수주하면서 갖은 계약서와 견적서, 서류 등을 관리하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사용하려 구입했던 파일의 마지막 칸까지 서류들이 수두룩하게 쌓였고, 더 효율적인 파일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문구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계약건의 액수가 클수록 필요한 서류가 많아지고, 담당하시는 분들마다 꼼꼼히 보는 서류들이 달랐다. 타 견적의 도장 직인이 필요하다며 서울 업체에 직접 요청을 바랐던 분도 계셨고, 견적서의 날짜를 지워달라는 분, 겹쳐서 찍는 도장을 합성해서 달라고 하시는 분 등, 상황에 맞는 계약서류와 마음가짐을 준비하면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계약하는 날짜가 잡히면 옷장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기,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해 서류철의 제일 앞쪽에 끼워놓기, 두 번째 뵙는 분이면 그분이 따로 요청할법한 서류나 새로운 상황에 문제가 없도록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해놓기 등..


최근에는 재단에 계약건이 있어서 방문을 예약했다. 사놓고 잘 입지 않던 코트를 입고, 효율적인 파일철을 챙겨 방문했다. 조용한 사무실의 분위기에 긴장하며 준비했던 서류와 도장을 건네드리고, 계약서류를 확인하는 담당자를 쳐다봤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도장 몇 번으로 끝났다고 하는 담당자에게 


"벌써, 다 끝났나요?" 

"네, 다 끝났습니다." 


여타 다른 곳과는 달리 쉽게 끝나버린 계약에 이유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빨리, 그리고 쉽게 끝나는 계약 날은 그 날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계약장소 근처 카페에 

가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동업자 친구에게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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