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튜디오 생존기 #04
작은 소상공인 일에서 큰 규모의 공단 일까지 다양한 일을 수주하면서 갖은 계약서와 견적서, 서류 등을 관리하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사용하려 구입했던 파일의 마지막 칸까지 서류들이 수두룩하게 쌓였고, 더 효율적인 파일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문구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계약건의 액수가 클수록 필요한 서류가 많아지고, 담당하시는 분들마다 꼼꼼히 보는 서류들이 달랐다. 상황에 맞는 계약서류와 마음가짐을 준비하면서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계약하는 날짜가 잡히면 옷장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기,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해 서류철의 제일 앞쪽에 끼워놓기, 두 번째 뵙는 분이면 그분이 따로 요청할법한 서류나 새로운 상황에 문제가 없도록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해놓기 등..
최근에는 재단에 계약건이 있어서 방문을 예약했다. 사놓고 잘 입지 않던 코트를 입고, 효율적인 파일철을 챙겨 방문했다. 조용한 사무실의 분위기에 긴장하며 준비했던 서류와 도장을 건네드리고, 계약서류를 확인하는 담당자를 쳐다봤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도장 몇 번으로 끝났다고 하는 담당자에게
"벌써, 다 끝났나요?"
"네, 다 끝났습니다."
여타 다른 곳과는 달리 쉽게 끝나버린 계약에 이유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빨리, 그리고 쉽게 끝나는 계약 날은 그 날의 여운을 위해 근처 카페에 가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