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치를 스스로 매기는 것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것은 높은 수준의 통찰과 선구안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 안에 얼마나 귀한 보석이 숨겨져 있을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 듣기만 해도 기대가 잔뜩 부풀어 오르며 아주 빛나는 보석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잠재력이란 설레는 동시에 아주 위험한 단어다. 아직 펼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달콤하게 위로해 주니 말이다.
아쉽게도 인간은 원석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비유한다. 가능성이 있으니 잘 다듬기만 하면 언젠가 빛을 발할 거라고. 하지만 인간은 가만히 둔다고 해서 가치를 발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나서서 친히 다듬어주지도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이면서 자신의 형태를 원하는 대로 바꿔나가는 존재다. 그리고 잠재력이라는 말은 이 과정을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제멋대로 뭉뚱그려 미래의 결과만 먼저 상상하게 만든다. 그 결과에 부정이 들어갈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석의 가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은보다 금이 더 가치 있고 금보다 다이아몬드가 더 가치 있다. 반대로 인간의 가치는 이런 식으로 태생부터 정해지는 게 아니다. '타고난 팔자'라는 말도 있다지만 태생부터 한계가 정해져 있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전전긍긍하던 이가 한 기업의 대표가 될 수도 있다.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 한들, 희망을 품는 게 잘못된 일이겠는가. 희망은 원래 헛된 것이다. 온전한 희망이라는 건 없다.
잠재력의 문제는 내재된 가치를 스스로 매겨야 할 때 나타난다. 보석은 눈에 보이지만 인간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니 정보가 많은 만큼 편향될 가능성은 크다. 내가 자신만만할 때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으면서도 조금 풀이 죽으면 금세 불안과 자책이 몰려와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잠재력은 자신을 믿게 만들기도 하지만 현재의 나를 부정하게 만든다.
숨어있는 잠재력은 이상향이라는 글자와 함께 다닌다. 감춰진 힘과 재능은 이루어내고 싶은 것을 향하니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잠재력에만 집착하는 순간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외면하기 시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잠재력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품처럼 끝없이 부풀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나는 더 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아직 새싹일 뿐인데도 기대에 부풀어 벌써 나무의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도달하지 못한 가능성만 바라보느라 발밑에 있는 작은 성장의 기회를 놓친다. '이상적인 나'에 대한 생각은 이런 위험성을 가진다. 내가 꿈꾸는 이상향과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눈앞에 놓인 선택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나 자존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저 현실을 거부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나'를 지키기 위해 멈추게 된다.
잠재력은 가능성이라는 거품의 이름을 빌린 자기부정이 될 수 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이루어진 결과가 없으니 누군가에게 판단당할 여지도 없다. 아직 성장 중이라는 이유로 나를 향한 잣대가 없다니 무척 안심되는 일이다. 아주 그럴듯한 변명이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안식이 당장엔 편안해 보여도 길게 머물만한 것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의 나를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은 채 미래의 나만 믿는 행동은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어쩌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기회들.
• 지금에 만족하는 것
• 더 멀리 바라보는 것
두 선택지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회색지대가 있다. 내 위치와 이상향의 거리가 클수록 갈등이 더 심해진다. 이상향과 현실. 그래서 목표와 뒤섞여 추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없게 된 잠재력은 차라리 독에 가깝다. '이런 건 내가 아니야', '이 정도로는 부족해'라며 현재를 끊임없이 깎아내린다.
건강한 잠재력은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삼는다. 나를 재촉하지 않고, 실패작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 잠재력을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 '이건 내가 가진 가능성과 재능을 낭비하는 선택이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선택이 내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또는 '미래에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편이 더 안전하다. 현재의 기회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딱 잘라 놓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내가 이상향을 꿈꾼다면 과감히 이상향에 뛰어들어도 좋다. 다만, 그 결과가 계속 좋지 못한대도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은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꿈을 크게 가지되, 실패한대도 현재를 무의미하게 희생시키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배울 점이 많다.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으면서 오래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삶은 끝없이 증명해 내야 하는 경기가 아니며, 모든 요구에 나 자신을 완벽히 증명해 내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쓸모와 목표만 남는다면 그것이 평안한 삶일까. 자신의 힘은, 잠재력은 남에게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