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그것
칭찬은 무척 기분 좋은 것이지만 가끔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교만해질까 봐, 자만에 빠질까 봐 칭찬을 아끼고 곧바로 '겸손해야지'라는 가르침을 뒤따라 말한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유독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좋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의심을 먼저 배우는 분위기가 강하다. 요즘은 점차 잦아드는 것도 같지만 여전히 칭찬이 어려울 때가 있다. 하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칭찬을 받진 않는다. 이미 충분한 자기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칭찬과,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칭찬은 다르다. 실패를 겪은 사람이나 어깨에 긴장이 잔뜩 들어가 경계심이 높아진 이에게 칭찬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정말 그런가?"
"그냥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 아닌가?"
"나한테 그런 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기뻐하기보다 먼저 경계하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칭찬 뒤에 숨겨진 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아니면 그저 텅 빈 허울 좋은 말일 뿐이라고. 굳이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성장하면서 잘한 일보다 부족한 일을 먼저 짚고, 장점을 살리기보다 단점을 고치라 들은 적이 많을 것이다. 95점의 시험지를 보여주면 '잘했다'가 아니라 '더 노력했으면 100점이었겠네'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필요 이상으로 겸손하게 자라왔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사람이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칭찬은 누군가에게, 어떤 기관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남이 그렇게 불러줬다면,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칭찬은 과연 사람을 망치게 될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자라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칭찬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달콤한 망가짐이 또 어디 있을까. 칭찬이 사람을 망치는 게 아니라 칭찬을 전혀 믿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 사람을 망치는 데에는 더 효과적이다. 의심이 좋게 작용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누군가의 한마디 말은 다시 한번 시도해 볼 용기가, 또는 시작할 동기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말에 흔들릴 만큼 마음이 여려서가 아니다. 인간은 결국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여나 지치고 초라한 나에게도 누군가 칭찬을 해준다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다. 이 정도는 받아들이고 기분이 좋아져도 되는 것이다.
겸손은 칭찬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 칭찬을 바탕으로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고, 더 잘 해보려는 마음에 가까워야 한다.
내가 나를 초라하게 느낄 때 듣는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은 칭찬보다 비난이 더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칭찬받을 자격 같은 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이 나를 멋지다고 해주었다면야. 그대로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진 않은가. 어쩌면 그 말로 인해 자신을 멋지게 가꾸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칭찬의 순기능이다. 자꾸만 검열하고 의심한다면 악순환만 낳을 뿐, 좋은 거름으로 쓸 수 없다.
이제 좋은 말 하나쯤은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