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함께 공존하는 법

떠나고 싶지만 자꾸 뒤돌아보게 될 때

by 한울 Hanul


"포기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간단하지만, 언뜻 무책임해 보이는 말이다. 어떤 심정인지 알고 감히 포기하지 말라 말하나? 어떤 가능성을 보았길래 할 수 있다 말하나? 미래가 보이지 않고 앞날이 캄캄한데 어째서 그리 쉽게 계속하라 말하나. 왜 밑 빠진 독에 힘을 내서 물을 채우라 말하나.

실패를 겪고 어찌저찌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다잡아보면 한 번쯤은 막히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굳게 다짐했다고 하더라도 흔들리는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 그냥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 포기하고 싶은 날.

흔히 이런 마음은 부정적이고 쓸데없다며 당장 떨쳐내야 한다고 여긴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약해졌다는 증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라는 것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나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충분히 해왔다는 방증에 가깝다.

꿈과 도전, 인생에 있어서 포기는 사라지는 단어가 아니다. 사라질 수도 없다.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한다 한들 못 본 사이 더 크게 자라나 눈앞에 돌아온다. 피할 수 없고 없앨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 그냥 두는 것. 공존하는 것이다.

오늘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거.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나까지 전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포기'라는 글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0의 상태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 포기란 그런 것이니까. 모든 것을 놓고 버린 다음에 상자에 넣어 단단히 잠가버리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것은 공존이 아니다. 내가 일시적으로 잠가버린다고 해서 영원히 포기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포기와 공존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하면 된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공존을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단을 내렸을 때 나온 선택지가 '포기'라면 깔끔히 떠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포기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은, 실은 계속해야 한다거나 계속하고 싶다는 뜻과 같다. 즉, 역설적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잠시 그만두어도 괜찮다.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멈췄을 뿐인데도 '벌써 포기했어?'라고 묻는다. 멈춤과 포기는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멈추는 것은 내가 길을 잘 지나왔는지 점검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고, 포기는 방향 자체를 놔버리는 일이다. 100의 일을 하려다 0이 되는 대신, 할 수 있는 10만큼만 남겨두면 된다. 정도의 차이를 두는 것이다. 굳이 전부 놓을 필요 없다. 90이라는 일부만 포기해도 남은 10이 다음날 다시 생각을 바꾸는 유일한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모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전부 끊어낼 필요는 없다.

오늘 쉬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제보다 못했다고 해서 멋대로 못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꾸준함과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한들 하루에 책을 백 장씩 읽기로 했을 때 매일 지킬 순 없는 것이다. 어떤 날은 열 장만 읽고, 어떤 날은 술술 잘 읽혀서 이백 장을 읽을 수도 있다. 꾸준함에는 변동 폭이 있다. 평균에 가까워지려 하는 것은 가짜 꾸준함이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 하고, 될 것을 대충하며 억지로 할당량을 채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이런 방법이 자신을 갉아먹고 포기라는 글자를 더 자주 떠올리게 만든다.

이미 지친 사람에게 '포기하지 마!'라고 하는 것은 응원이 아니다. 바닥난 의지를 억지로라도 생산해 보이라는 요구이자 더 버티라는 짐을 친히 어깨에 올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시원하게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그 마음이 들어도 괜찮다고. 그것은 당신의 의지가 나약해서도 아니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아니라고. 오히려 충분히 애써왔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포기를 느끼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는 그 마음이 왜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포기를 적으로 인식하고 없애야만 한다고 악착같이 밀어붙이는 순간 자기 자신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다 하지 못했지만 괜찮아."
"한 번 실수한 걸 실패로 보진 않을래."
"내일,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하면 돼."

나를 지키기 위해 이 정도만 하겠다고 선을 긋고 여유를 내어준다. 끝까지 가겠답시고 억지로 붙든다면 이것이 친숙하면서도 무서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것.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말이다.

• 나는 지금 무엇이 버거운가
• 계속하기 위해 무엇을 덜어내야 할까

이 두 가지 질문은 포기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어떻게 해야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지. 포기를 굳이 밀어내지 않더라도 인생은 지속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포기라는 마음이 진정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나'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이 되는 일. 이 포용과 공존이 오히려 더 먼 곳까지 향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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