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할 말, 듣지 말아야 할 말

어떤 말을 골라야 할까

by 한울 Hanul

한때 지구에는 인류가 한 종류만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있다. 둘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네안데르탈인도 일부 남아있다고 하지만 최종적으로 현대에 살아남은 것은 호모 사피엔스다. 이 결과에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회 및 문화적 연결망의 차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집단의 규모가 작고 교류 범위가 좁았다고 한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더 넓게 연결되고, 더 많이 교류하고, 더 자주 소통하며 유연하게 적응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건 필연적으로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평가를 의식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힌 본능이다. 어찌 보면 축복처럼 느껴야 한다. 이 능력이 있었기에 살아남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해 발달한 이 능력이 저주가 될 때가 있다. 때로는 자신을 의심하고 멈추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말'이라는 것을 피하고 경계해야 하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아예 소통 없이 사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물론, 은둔자로 생활하는 것도 인생에서는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여다보는 시기를 갖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오랜 시간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말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말을 고르는 법이다. 들어야 할 말을 듣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은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기 위해 진화했지만 그 연결이 나를 지배하도록 둘 필요는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말 한마디에 많이 흔들린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주변의 한 마디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모든 감정이 악의는 아니지만 모든 걱정이 진심도 아니다.


어떤 말은 상대방을 걱정하며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어떤 말은 자신의 불안과 초라함에서 나온다. 겉으로는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질투며 열등감이며 두려움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이 있다. 그 말이 나를 위로 올려보내기 위해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를 현재 위치에 묶어두기 위해 하는 말인지 따져보면 된다. 직접 부딪히고 겪어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해 봐."

"일단 부딪혀봐."

"실패해도 괜찮아."


그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몸소 겪고 부딪혔기에 실패 뒤의 성공을 얻어냈다는 것을. 반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결과부터 단정 짓는다.


"그거 쉽지 않아."

"괜히 더 힘들어지기만 할 걸."

"지금도 나름 나쁘지 않잖아?"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오래 봐 온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객관적이고 지혜롭진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한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의 말일수록 그 사람의 불안이 더 크게 섞여 있을 수 있다. 가까울수록 잘 안다는 뜻이고, 수준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참고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굳이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경험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이 말하는 조언은 실제로 겪어본 것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있다. 인터넷에서 대충 떠돌아다니는 그럴듯한 말을 조언이랍시고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있다. 선동을 잘하는 사람도, 잘 당하는 사람도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우리는 같이 뛰고 있었는데 네가 갑자기 하늘을 날아가겠다고? 안 되는 일이지! 분명 추락할걸? 괜히 도전하지 말고, 그냥 뛰어. 우리는 그게 어울려.'


이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많은 인간은 질투하고 미워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 오히려 그 감정을 내려놓은 사람이 비범한 사람인 것이다. 그저 그 말이 내 선택을 대신하게 두지만 않으면 된다.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삶을 중심으로 판단해도 되는 것 아닐까.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원하는 방향으로. 이는 이기적인 선택이라 부를 수 없는 성숙한 선택이다.


여전히 말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다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나를 멈추게 하는지.


그것만 봐 보는 것이다. 내 인생의 방향은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목소리가 정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온전히 나의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남의 방식에서 벗어나고, 남의 말에서 벗어나고. 외부로 있던 기준을 내부로 돌려놓아야 한다.


참고해야 할 것은 참고하되, 최종 결정은 두려워하지 말고,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겨두자.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전 10화주변 시선이 주는 압박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