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내 생각대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속뜻은 곧 배신이다. 내가 계획했던 만큼의 일이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주 인생에게 배신당한다. 분명 어렸을 적에는 더 멋진 꿈을 꾸고 아름다운 나를 기대했던 것도 같은데, 현재에 와서 예상대로 된 것이 많지 않았고 아득히 멀어진 꿈도 있다.
열심히 준비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오고 확신했던 선택도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무뎌진 체념과 함께한다. 그러곤 종종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고. 이런 결과를 만든 건 결국 자신이었다고.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감히 미래를 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딘가에는 정답이 있고 진리가 되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그 방법을 따라 하고 걸으면 안전하게 미래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세상에 사실 정답이 없다는 건 무척 불안한 일이니까. 왠지 100%의 정답은 없더라도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것'은 있을 것 같다.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미래는 불확실한 것투성이다. 오히려 모든 게 생각대로 흘러가는 삶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결말이 다 정해져 있는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도 어떻게 될까 심장 졸이며 긴장감을 즐기는데 말이다. 누가 결말을 먼저 옆에서 눈치 없게 말해버리면 김이 팍 새는데 말이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건 생각보다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틀렸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말 그대로 예측이 빗나간 것뿐이다. 그리고 예측은 원래 자주 빗나간다.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니까. 뭐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와야 하지만 꼭 해가 뜨지 않아야 하는 법도 없다. 눈이 오면 건조하고 손이 아릴 정도로 춥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 이불 속에 따뜻하게 있기만 하란 법도 없다.
미래가 원래 불확실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덜 두려워지는 감이 있다. 어차피 확신은 없고, 어차피 완벽한 준비도 없고, 어차피 다 틀어질 수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도전이고 열정이고 실패를 감수하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세계에 한 발 내딛는 일이 된다. 안 되면 말고, 되면 좋고.
"혹시나 망하면 어떡해?"
"괜히 해서 더 안 좋아지면?"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한 적이 없다. 이를 인정할 수 있다면 도전은 특별히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삶의 한 방식이 된다.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삶이고 인생이고가 그런 구조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개인에게만 주어진 게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조건이다.
미래를 모른다는 건 곧 두렵다는 뜻으로 직결될 필요가 없다. 다양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더욱 좋다. 처음 계획과 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았던 순간도 있다. 그 길 덕분에 다른 사람을 만났고, 다른 생각을 배우고, 예상치 못한 기회를 찾았다. 정말 모든 어긋남이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래는 결론이 나지 않았고 다른 길이 남아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만이 유일하고 가장 좋은 것이라 단정하는 순간 스스로 가능성을 닫고 한계를 정해버리는 것이다. 아직 겪지 않은 미래를 미리 판단하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 그 태도는 지독한 오만이다.
인생은 정답을 고르는 시험지가 아니다. 직접 걷고 부딪히며 정답을 찾아나가는 것에 가깝다. 남들이 말하는 답은 정말 '남의 답'일 뿐이다. 생각과 말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비로소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게 정해지지 않았다. 즉, 모든 것이 바뀐다. 뜻대로 되지 않은 오늘은 한계가 아니라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이 어긋났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의미로 남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나름 괜찮았던 시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