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무슨 죄?

바람의 유혹

by 파인레베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일과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큰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산책이다. 강아지의 행복을 위해 주로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번 이렇게 두번 산책을 시키는데,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는 이 산책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호기롭게 나갔다가 온몸이 땀에 절어 헥헥 거리는 강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적이 여러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은 쓰레기를 버리러 콘도 복도에 나와 있었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는 콘도 집안이나 복도에 쓰레기 투입구(슈트’chute’라고 부름)가 설치되어 있다. 쓰레기를 슈트에 넣고 돌아선 순간 여름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시원하고 힘찬 바람이 콘도 양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고민했다. 아침 8시. 이미 해는 떠있다. 보통 같았으면 8시 이전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었겠지만, 그날은 오전 산책을 미처 시켜주지 못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강아지가 쪼그려 앉아 귀여운 눈망울로 날 쳐다본다. ‘엄마 산책가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이건 실제로 강아지의 마음이 아닐수도 있다. 그저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나온 나의 해석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 지금 바람도 마침 시원하니 한번 나가보자.’ 더 더워지기 전 강아지에게 얼른 목줄을 채우고 핸드폰만 간단히 챙겨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바람은 멈추지 않고 불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상쾌한 바람이었고 어떤 코스를 돌면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콘도 정문을 나오자마자 반갑지 않은 햇빛이 모자도 쓰지 않은 내 정수리를 내리쬐었다. 내가 사는 이 곳이 적도의 싱가포르 라는 점을 잠시 간과했었다. ‘아, 썬크림도 못바르고 나왔는데. 더이상 탈 것도 없이 난 이미 완벽히 까만데...’ 이런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강아지는 밖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신이 나있다. 내가 인스타 피드를 통해 주변인들을 확인하듯 강아지는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다른 이들의 소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이리저리 신나게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니, 다시 집으로 끌고 데려갈 수가 없었다. 결국 최대한 그늘로 다니면 괜찮겠지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5분 후 이미 난 후회하고 있었다. 분명 그늘로 시작한 길이었는데, 길이 꺾일때마다 자꾸만 햇빛이 따라왔다. 나무들마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얼굴에서 땀이 흐르고 난 바람에게 단단히 속았구나 싶었다. ‘바람, 네가 시원하게 해준다며. 그러니까 나와도 괜찮다며.’ 괜히 죄없는 바람을 탓했다.


하지만 바람은 그저 사심없이 흘러간 것 뿐이다. 건물 구조상 복도에 바람이 잘 드나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은 나의 삐뚤어진 미움을 받게 되었다. 바람은 이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억울할까.

사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내 임의대로 해석하고 의미부여한 나의 탓이다.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산책을 마무리 지으려했던 나의 욕심이다. 실제로 강아지가 이 더위 산책을 즐겨했는지 어땠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강아지를 만족시켰으리라 착각하며, 강아지의 행복을 소중히 여겼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 자만심이 초래한 결과이다.


우리 인생에서 많은 것들이 이와 같지 않을까?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긴다’ 라는 옛말처럼 애꿎은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도 실제로 죄가 없는 누군가를 탓하며 불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