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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지 못하는 당신에게,

혹은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by 하늘바람

오늘도 실패했다.


아침에 쓰레기통에 버린 담뱃갑을 점심때 다시 주워 왔다. 편의점 알바생은 내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금연 앱은 삭제했다가 다시 깔기를 열 번째. '금연 7일차' 뱃지를 받았다가 잃기를 스무 번째. 이쯤 되면 나도 안다. 문제는 의지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왜 매일 같은 전쟁을 반복하는가


금연 클리닉 의사가 물었다. "왜 담배를 피우세요?"


"스트레스 때문에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스트레스가 없으면 안 피우시겠네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스트레스 없는 삶이 가능하기나 한가?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진실은 이거였다.


나는 담배를 끊으려 하고 있었지만, 정작 담배가 필요 없는 나를 만나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붕대를 떼려고만 할 뿐, 상처를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담배는 그저 충실한 일을 했을 뿐이다. 회사 화장실 변기에 앉아 눈물을 참을 때, 연인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왔을 때, 새벽 세 시 불안에 잠을 설칠 때. 담배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5분의 유예. 5분의 숨 고르기. 5분의 회피.


진짜 질문


어느 날,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견디기 힘든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담배를 든 손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견디기 힘든 게 뭐였더라. 상사의 잔소리? 월세 걱정?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나'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이 방향이 맞는지. 그 불확실함 속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건 라이터를 켜면 3초 뒤 담배 끝에 불이 붙는다는 것뿐이었다.


담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담배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관찰하기로 했다.


"14:32 / 회의 끝 / 뭔가 내 의견이 무시당한 느낌 / 분노 7/10"


"19:45 / 퇴근 길 / 집에 가면 혼자라는 생각 / 외로움 8/10"


"23:15 / 자기 전 / 내일도 오늘 같을 것 같은 두려움 / 무력감 9/10"


일주일 뒤, 패턴이 보였다. 나는 담배에 중독된 게 아니라 회피에 중독되어 있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연기로 흩어버리는 게 편했다.


작은 실험들


담배를 피우기 전 30초를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엔 30초가 30분처럼 느껴졌다. 그 30초 동안 올라오는 것들이 있었다. 억눌렀던 서러움, 무시했던 분노, 외면했던 두려움.


때로는 그냥 울었다. 회사 옥상에서, 동네 공원 벤치에서,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서. 담배 대신 눈물을 태웠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30초를 견디고 나면, 가끔은 담배가 필요 없어졌다. 내가 원했던 건 니코틴이 아니라 잠시 멈출 권리였다는 걸 알았다.


담배와의 작별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안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 그건 실패가 아니라 신호라는 것을. 무언가 견디기 힘든 게 있다는, 내 마음이 보내는 SOS라는 것을.


오늘 아침에도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이번엔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니?"


답이 왔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이 견디기 힘들었어."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담배 한 갑 값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castella를 택배로 보냈다. 담배는 한 개비 줄었고, 마음은 한 뼘 가벼워졌다.


우리 모두의 담배


당신의 담배는 무엇인가요?


술인가요? 쇼핑인가요? 연애인가요? 일인가요?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놓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탓한다. 의지가 약하다고, 결심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끊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필요 없는 나를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렇게 견디기 힘든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치유를 시작할 수 있다.


P.S. 이 글을 쓰는 동안 담배를 두 개비 피웠다. 하나는 쓸쓸해서, 하나는 마감이 두려워서. 그리고 지금, 그 두려움과 쓸쓸함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갖게 된 것들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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