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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n 01. 2024


2008년 9월,

5년간의 고시원 생활을 마치고

월세 집을 구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부동산을 찾았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감정이었다.

마침내 적당한 집을 발견하고 우리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잠시 후 집주인은 부동산에 도착했고,

우리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집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집주인은 나의 불편한 몸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나가버렸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놀란 우리 가족은 집주인을 따라 나갔고,

그 사람은 도망치듯 차에 타고 떠나려 했다.

우리 가족은 이유를 묻기 위해 차문을 두드렸지만, 그는 우리를 무시한 채 떠나버렸다.


그 순간 우리는 집주인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록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태의 원흉이었던 나로서는 참 미안하고 부끄럽고 허탈하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 경험은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부터 매번 집을 구하러 다닐 때는 나는 가지 않고,

가족들이 나 대신 발품을 팔았다.

도움받는 것을 싫어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살 집인데도 불구하고, 이사하는 당일에서야 집을 비로소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도전을 동반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또다시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그 경험은 여전히 나의 마음 한구석에 깊이 박혀 있다.

그 꼴을 나 혼자 당했으면 나 혼자만 아프면 되지만

가족들이 다 있는 데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마음이 더 안 좋았다.


가족들이 대신 나서서 집을 보러 다녔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집을 구하는 일은 단순히 거주지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일들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고,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배제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 근데 내가 집주인이었어그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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