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서울살이 5년째. 익숙해졌지만 편해진 적은 없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래 다닌 회사였고 나름대로는 버티고 있었다. 큰 기대도 불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가 폐업을 선언했다.
처음부터 감이 안 좋았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금융권 프로젝트를 너무 큰 규모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부터였다.
직원들끼리 “이건 리스크가 큰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다들 불안해했지만, 우리는 그저 직원에 불과했고,
우리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불안은 현실이 됐다.
회사는 문을 닫았다.
얼떨떨했지만 오래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늘 그랬듯 곧바로 이직을 준비했고,
다행히 새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직이 결정되자 자연스럽게 이사를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회사 근처 아무 고시원에 들어가 지냈다.
좁은 방, 얇은 벽, 복도에 울려 퍼지는 타인의 말소리, 북적이던 공용 화장실.
5년 동안의 고시원 생활은 말 그대로 ‘견딤’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혼자 사는데 이 정도면 됐지’ 싶었지만,
그 생활이 오래될수록 점점 숨이 막혔다.
더는 그런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비록 밀린 월급과 못 받은 퇴직금이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내 방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 주말이었다.
어머니와 셋째 형, 조카들과 함께 새 회사 근처인 구로 가산동을 둘러보기로 했다.
부동산을 몇 군데 돌았고, 조건이 괜찮아 보이는 집이 하나 나왔다.
중개인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직접 찾아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어머니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고, 형과 조카들도 인사를 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집 내부를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집주인이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언제 눈치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명히 표정이 달라진 게 보였다.
말은 없었지만 얼굴에 드러난 미묘한 낯섦과 불편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다른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나는 그 변화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당황해서 그를 따라 나섰고, 그는 말도 없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나는 창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시선을 돌린 채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우리는 그대로 멍하니 도로에 서서 그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도 듣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과 태도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이었어도…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를 원망하기보단, 오히려 내 처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이 꾹 눌린 채, 가슴 안에서 천천히 차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집을 직접 보러 다니지 않았다.
또 같은 일을 겪을까 봐 겁이 났고,
무엇보다 가족들 앞에서 그런 수모를 다시 당할까 두려웠다.
그 뒤로는 어머니와 형이 먼저 부동산을 돌았다.
괜찮아 보이는 집이 있으면 그제야 내가 확인하러 가는 식으로 바뀌었다.
며칠 뒤, 결국 다른 집을 찾아 계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내가 그 집 안에 처음 들어선 건, 이사 당일이었다.
작은 반지하였다.
창밖으로는 사람 다리만 보였고,
낮인데도 형광등 불빛 없이는 어두운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은 ‘내 공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날의 일은 조금씩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잊히진 않았다.
특히 가족들 앞에서 그렇게 노골적인 거부를 당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았다.
혼자였다면 그냥 내 마음만 다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을 겪고,
그들의 표정을 바라봤을 때
그 미안함과 죄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나 하나 다친 게 아니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조용한 흉터 하나씩 새겨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