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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n 01. 2024

펜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연예잡지에 펜팔 구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실 뽑힐 거라 기대하진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하지만 며칠 후, 내 이름으로 수십 통의 편지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정말 내가 보낸 편지가 실렸단 말인가?

매일 아침 우체통을 열 때마다 편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는 일은 마치 꿈만 같았다.

거의 한 달 동안 하루에 10통이 넘는 편지가 나에게 도착했다.

각각의 편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나와 통할 수 있는 친구를 찾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한 편지 봉투를 열었을 때 사진 한 장이 나왔다.

교복을 입은 채 밝게 웃고 있는 이쁜 여학생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녀의 눈빛에는 맑은 호기심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그녀의 편지는 단연 돋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즉시 100문 100답을 작성하여 답장을 보냈다.

우리의 편지교환은 그렇게 시작됐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다.

또 한 편지에는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했다.

편지를 쓴 이의 문체는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감동적인 편지에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글귀의 편지를 더 받아보고 싶어 답장을 썼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하자고 답장을 보내왔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십 통의 편지들 중에 두 명의 친구와 펜팔을 시작하게 되었다.
펜팔을 통해 알게 된 이 두 친구와의 교류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녀들과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나는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나의 시야는 한층 더 넓어졌다.

매번 편지를 받을 때마다 느꼈던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사진 속 여학생과의 편지는 서로의 일상과 꿈, 그리고 고민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이는 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또한, 아름다운 글귀들로 편지를 보내왔던 다른 친구와의 교류는 문학적인 감성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친구와의 편지를 통해 나는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더욱 키우게 되었고, 나도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마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듯했다. 그녀의 깊은 통찰과 따뜻한 공감능력으로 내 감정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특별함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이렇게 시작된 펜팔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 시절의 편지들은 아직도 내 서랍 한 켠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가끔씩 그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보면,

당시의 설렘과 감동이 다시금 떠오르곤 한다.


--

문학소녀는 고3때 공부때문에 더이상 편지가 없었고,

사진을 같이 보내왔던 소녀는 내가 25년이나 짝사랑했던 바로 그녀였고 2년전까지 연인인양 낯간지러운 톡도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희망고문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2년전 잠수를 탔다. 25년을 알고 지냈으니까(딱 한번 만나서 같이 밥 먹었더랬다),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일말의 가능성은 있지않을까 는 심정에 마음을 살짝 표현했지만 못 들은척 일상얘기만 하는 걸 보면서 그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된 이상 모든 게 식어버리고 귀찮아진 것이다.

--


그 시절,

소녀들은 펜팔친구 그 이상이었다.

나의 학창시절을 더욱 풍부하게 채워주었고,

어쩌면 세상을 등질 수도 있었던 사춘기 시절,

나를 무사히 견뎌내게 하여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그녀들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녀들의 존재는 나에게 어둠 속의 빛과 같았으며, 그 덕분에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현재의 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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