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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n 01. 2024

계단

나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계단은 항상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에는 계단에서 굴러넘어진 기억은 없지만,

대학생 때의 그 한 번의 사건은 내 인생에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며 무심코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서 균형을 잃고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천만다행으로 피부가 까진 것 말고는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계단을 마주할 때마다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30대 초반, 나는 5년 동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명동에서 파견지였던 가산디지털단지까지 5개월 동안 매일 출퇴근하기도 하고,

중형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하는 등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어렵게 돈을 모았고,

피곤함에 지쳐가면서도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버텼다.


나는 고된 노력 끝에 모은 돈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드디어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고 생각된 순간, 나는 오랫동안 원했던 자세 교정을 결심했다.

나는 다리 교정을 통해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가족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단단한 결심으로 회사에 6개월 무급휴가를 신청했고,

여러 가지 검사와 준비를 마친 후 수술 전날에야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양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3개월을 보냈고, 그 후 1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다.

총 비용은 3천만 원에 달했다.

이 여정 동안 육체적인 고통과 힘들게 일해서 벌어놓은 돈이 아까웠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내 자세는 확실히 개선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일자였던 발목을 ㄴ자 상태로 교정했지만,

애초에 발목을 움직이는 신경이 죽어있었기 때문에

발목을 굽히거나 펴는 등의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자세는 나아졌지만, 거동은 더 불편해진 것이다.

교정 전에는 손잡이 없이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술받지 않은 왼발만 한 계단씩 내딛으면서 손잡이를 의지한 체

내려가야 했다.


수술 후 첫 몇 달은 기분은 좋았다.

자세가 나아진 것을 주변 사람들도 알아봤고, 나는 그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내면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계단 앞에 서면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잡이를 꽉 잡고 한 걸음씩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자세 교정 수술을 받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비록 거동은 더 불편해졌지만,

사람들 앞에서 좀 더 당당하게 걸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내가 이상하게 걷는다는 것을 알아채는 경우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눈에 보이는 순간 바로 알아채고

뒤따라 오면서 흉내내며 놀리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일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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