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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Oct 26. 2024

고통 너머의 자유

장애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고달픔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불편함'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는 하루하루의 실존적 문제로 나를 압도하는 삶의 무게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적 고통은 더욱 짙어지고, 사회적 고립감은 더욱 깊어지며, 심리적 부담감 또한 크게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를 더욱 외롭고 지치게 만들 뿐이다.

나의 삶에 있어, 안락사는 언젠가부터 하나의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 남은 삶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올 때, 나는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조용히 떠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55세에서 60세 사이, 내가 충분히 삶을 살아내고, 그 동안의 힘겨운 싸움에 대한 보상처럼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끝을 맺을 것이고, 그 안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안락사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지 않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현실에서 언젠가는 안락사가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가 되면, 이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안락사는 단순한 죽음의 선택이 아닌,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특히, 끝이 점점 다가올수록 더 깊어지는 외로움과 고통을 덜어내는 마지막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두고 비난하거나, 사회적 책임감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장애인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을, 그리고 그 고통이 중첩되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더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현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외로움에 맞서는 감정은 매일의 전쟁과도 같다. 나의 선택은 이러한 모든 것을 오롯이 짊어져 온 나 자신의 자율적인 결단이자,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마지막의 위로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결정을 무겁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안락사가 합법화된다면, 그것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마지막에 스스로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마련된다는 것은 작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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