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돛이 없는 돛단배 Oct 28. 2024

그리움의 언어, 청춘을 엮다

학창 시절, 나는 언제나 조용히 창가 교실 뒤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성적은 늘 바닥을 맴돌았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곤 했다. 공부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지만, 가끔 그림으로 작은 상을 받으며 작디작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과도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성적에 따라 학교가 나뉘면서 우리는 서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 이별은 익숙한 세상과의 작별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의 일부였고, 그들과의 이별은 마음 깊이 쓸쓸함을 남겼다. 한편으론 그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지,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허전함으로 남을지 두려운 마음이 밀려왔다.

친구들이 각자의 고등학교를 정하던 무렵, 나 역시 새로운 학교로 가야 했다. 하지만 내 장애가 걸림돌이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고민 끝에 나는 장애인 특수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멀리 경기도에 있는 학교로 떠나기로 했다. 그곳이

나로서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고향을 뒤로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은 마치 두껍고 단단한 껍질에 갇힌 기분을 들게 했다.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 조금은 편안할 줄 알았지만, 모든 것이 생소했고, 쉽게 친해지지도 못했다. 학교와 기숙사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반복되는 생활은 나를 갑갑하게 했고, 청소와 점호 같은 규칙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일 저녁 공동 목욕탕에서 씻는 것도,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것도 내겐 불편한 일이었다. 10년을 혼자 살며 자유로웠던 내 생활과는 달리, 기숙사 생활의 제약과 규칙 속에서 하루하루는 길고 무겁게 흘러갔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치 도망치듯 자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로의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6개월 동안 마음을 달랬다.

장애를 안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일이 여전히 두려웠지만, 특수학교에서의 경험 덕분에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일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들의 왕따나 괴롭힘없었으나, 선배들로부터 단체 기합을 받을 때마다 나 혼자 열외되는 상황이 반복되며 친구들한테 미안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 초중학교 때 함께했던 친구가 한 학년 위에 있어 덕분에 학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업에는 흥미가 없었고, 교실 맨 뒤에 앉아 교과서나 공책 한쪽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가끔은 친구들에게 장난 삼아 야한 그림을 그려주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1학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학교 퀸카 중 한명이었던 여학생이 내 책상에 작은 카드를 남겨 두고 갔다. 그저 친구 사이에서 주고받는 카드라 생각했지만, 카드를 열어보니 그녀의 진심 어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친구들 몰래 서로의 집으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등하교 길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일부러 시선을 피하거나, 눈이 마주칠 때 서로 살짝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녀와 주고받은 진지한 편지들은 내 고등학교 생활에 작은 설렘과 추억을 더해 주었다.

그때 나는 이미 두 명의 펜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던지라 총 3명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돌아보면, 내 고등학교 시절은 아이큐는 높게 나왔지만 공부머리가 없음을 알았기에 일찍이 포기하고 학업보다는 편지 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친 시간이었다. 매일 밤 홀로 빈방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하루의 일상과 복잡한 감정을 편지에 담아 다음 날 아침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며 등교하는 시간은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펜팔은 나의 감정 해방구였다. 말로 쉽게 꺼낼 수 없는 고민과 마음속 깊은 감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고, 펜팔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으며, 그들의 답장은 따뜻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림과 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은 내 청춘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힘든 날에는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마음의 짐을 덜곤 했다.

매일 밤 편지를 쓰던 그 시간들은 내게 무척 소중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고,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감정과 생각을 담은 작은 세계였고, ㅈㅅ까지 생각했었던 힘들고 고달팠던 사춘기 시절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렇게 보낸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들은 평생 내 마음속에 남았다. 학업은 뒷전이었지만, 펜팔을 통해 얻은 인연과 감정의 교류는 내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중 한 명은 2년 전까지 26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 삶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다른 한명은 SNS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의 포스트에 좋아요 눌려주는 것으로 안부를 전하며 지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고통 너머의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