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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Oct 29. 2024

넘어지지 않기 위한 고독한 여정

발걸음마다 새겨지는 불안의 흔적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지만, 조금 먼 거리라면 택시로 전철역까지 가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지하철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잔잔한 소음과 규칙적인 멈춤의 리듬 속에서 나는 묵묵히 길을 따라간다. 반면, 버스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친구 같다. 높은 차체에 오르기 어렵고, 서두르는 출발에 중심을 잃기 일쑤라 나와는 거리를 두는 이방인 같은 존재다.

2년 전 과천 아파트에 당첨되어 이사 온 뒤로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성수로 출퇴근한다.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내겐 그조차도 쉽지 않은 여정이다. 아침마다 택시를 불러 전철역에 도착하고, 퇴근 후에도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연봉이 적었다면 이런 생활은 사치였을 것이다.

출근길은 매일 같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새벽의 고요함을 타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자마자 익숙하지 않은 두려움이 엄습해오지만 나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회사에 도착해 일찍 문을 여는 작은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한 시간 반 동안 조용히 휴대폰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이 지나면 사무실로 올라가 하루를 시작한다.

내 다리는 불편하다. 그렇기에 출근과 퇴근은 그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 길은 내게 매일 스스로를 이겨내려는 작은 싸움이다. 익숙한 지하철역이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도 매번 새로이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전철이 도착할 즈음, 사람들은 각자의 걸음을 재촉하며 바쁘게 달려간다. 그들의 가볍고 빠른 발걸음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든다. 나도 저렇게 경쾌하게 달려가서 막 도착한 전철을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내 다리는 내가 원하는 만큼 빨리 움직여주지 않는다. 매번 전철이 도착할 때마다 나도 그들처럼 달리고 싶지만, 결국 '다음 열차를 타자'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 나만의 템포로 한 대의 전철을 보내고, 그 빈 플랫폼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곧 전철이 도착하는데, 느긋하게 걷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도 달려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그들이 알까? 아마 관심조차 없겠지. 다들 자기 길을 바쁘게 걸어가니까.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빠른 걸음에 오히려 나만의 템포로 천천히 걷는다.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또 마치 여유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나만의 방식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내 마음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나도 뛰고 싶다는 욕망과 느긋한 걸음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자기 위안이 부딪힌다. 이 내면의 싸움은 매일 반복된다. 출근길을 걸으며 나는 조용히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한다.

느긋한 걸음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걸음은 더디지만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은 풍경을 보게 된다. 사람들의 표정, 분주한 발걸음, 스쳐가는 광고판… 그 작은 장면들 속에서 잠시 씁쓸한 마음을 덮어본다.

사람들은 앞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고, 나는 그들 뒤에서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집을 나설 때부터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오늘도 조용히 걸어간다. 느린 걸음 속에서 나만의 평온을 찾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조금씩 다듬어가며 이 길을 따라간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나에게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될 나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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