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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이 없는 돛단배
Oct 30. 2024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일은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과도 같다.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작은 '생존 게임'을 준비한다. 지하철이 도착할 시간을 예측하며 플랫폼 끝에 서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은 이제 익숙하다. 눈앞에 다가오는 지하철의 전조등, 심장이 두근거린다. 혹여나 사람이 많아 손잡이를 잡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걱정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지하철 도착 음악소리가 들리면,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편히 설 수 있는 출입문 양쪽이 비어있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기다린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출입문 양쪽이 비어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만약 사람들이 서 있다면 재빨리 안쪽 공간을 탐색한다. 손잡이가 있는 위치에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빠르게 마치 퍼즐을 풀듯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빈 공간을 찾는다. 공간을 찾지 못할 때면 망설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옆으로 비켜서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운이 따라 손잡이나 기둥이 있는 위치에 공간을 발견하면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그 순간, 작은 승리의 기쁨이 나를 채운다. 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손잡이를 꼭 붙잡은 채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오늘도 무사히 이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실감하며 안도한다.
지하철 안은 하나의 작은 사회다. 각자의 일상에 바쁜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서로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면서도, 스쳐 가는 시선과 작은 몸짓들이 무언의 대화로 이어진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속해 있음을 느낀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들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도 균형을 잘 잡는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거나 책을 읽고, 심지어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까지. 나는 양손 장애로 인해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쓰는 일이 어렵다. 한 손은 손잡이를 잡아야 하고, 다른 손은 비워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저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천장에 붙은 광고를 읽어보거나, 광고 모니터에서 반복되는 영상을 따라가며 다음 역을 세어본다. 이 소소한 일들이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을 조금 덜 지루하게 만들어준다.
가끔씩 사람들의 얼굴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창밖을 응시하는 사람들,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눈을 감은 사람들. 그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다. 그들의 평온한 모습은 나에게 작은 위안과 활력을 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내 안의 생각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깊은 질문에서부터, '서버에서 캐싱하는 방법으로 뭐가 좋을까?' 같은 복잡한 개발 이슈까지.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는 시간은 짧지만 깊은 사색의 시간이다.
물론,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은 늘 쉽지 않다. 긴장된 근육과 피로는 나를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러나 나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나만의 평온을 찾으려 노력한다.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을 때, 나는 조금씩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지하철을 타고, 손잡이를 붙잡고,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며, 나는 나만의 출근길을 걸어간다. 이 시간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다.
지하철이 멈추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고 서둘러 내린다. 발걸음을 내딛으며 자연스레 앞과 양옆을 살핀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바짝 긴장하며 주변을 의식한다. 출구를 향해 걸을 때도 혹여나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 달려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긴장한 채 최대한 구석으로 비켜 다닌다. 앞사람의 발을 피해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지하철 안에서의 긴장과는 다른 활력이 나를 감싼다. 짧지만 깊은 이 시간이 모여 나의 하루를 완성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지하철에 오를 것이다. 또 한 번의 작은 '생존 게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매일 긴장을 안고, 작은 떨림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며 산다. 오늘도 지하철과 함께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