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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그린 걸음

by 돛이 없는 돛단배

어릴 적부터 나는 걷는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낯선 사람들의 힐끔거림, 아이들의 흉내와 놀림은 어린 나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았다. "왜 나만 이 꼴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나를 더 독허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의학 기술이 발전해 내 상황도 좋아질 거라 믿으며, 나만의 속도로 치열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30대 초반, 오랫동안 고시원 생활을 하며 회사를 열심히 다닌 끝에 제법 돈을 모으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수술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의사는 긍정적으로 답해주었고, "한번 해보자"는 말에 나는 결심을 굳혔다. 수술이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더 나은 내 모습을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회사에는 6개월간 무급 휴가를 신청했고, 모든 수술 준비와 입원 절차는 나 혼자 결정하고 처리했다. 가족들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수술이 다가오자, 가족들에게 겨우 소식을 전했다. 수술 당일, 가족들은 병원으로 달려와 나를 기다려주었고, 엄마는 간병인이 되어주셨다. 원래 계획엔 없던 일이었지만, 엄마는 내 옆에서 작은 것 하나까지 챙겨주셨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양쪽 허벅지와 발목에 걸쳐 근육을 늘리고, 뼈를 자르고 돌려 붙이는 대수술이었다. 양쪽 다리 전체를 깁스한 체로 꼼짝없이 병실에 누워 지내는 4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과연 얼마나 좋아질까?” 하는 기대만으로 버텼다. 병실에서의 지루하고 고된 일상은, 작은 희망으로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다. 깁스를 풀고난 후 2개월간의 물리치료도 쉽지 않았다. 굳어버린 근육을 다시 움직이고 새로운 자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수천만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물리치료실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을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까치발로 굳어 있던 발이 90도로 구부러지고, 안짱다리가 일자로 교정되어 있었다. 허리도 곧게 펴진 나의 모습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나아졌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현실은 내 기대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재활 과정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수술 전에는 양발을 번갈아 디디며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지만, 수술 후에는 발목이 받는 힘에 통증이 극심해져 손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었다. 한 걸음씩 내려갈 때마다 “회사 출퇴근은 어떻게 하지? 파견지에는 어떻게 가지?” 같은 현실적인 걱정들이 몰려왔다. 자세는 눈에 띄게 나아졌지만, 불편함은 그전보다 더 커진 것이었다.


수술 후 몇 달간은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회사 동료들은 “훨씬 나아 보인다”며 축하해주었고, 가족들도 내가 조금 더 당당해진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나 역시 이전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 앞에 서면 자연스레 한숨이 나오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몸의 자세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술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여정은 완벽하지 않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에 덜 흔들리고, 아이들의 놀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바란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한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나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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