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수업 스케줄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한 학기에 서너 과목이 동시에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몇 주에 한 과목씩, 학기당 세 과목 정도 개설된다. 보통 2~3주간 한 과목이 진행되고 30쪽 분량의 에세이 과제를 평가받는다. 수업 종료 후 2주 내에 제출해야 한다. 그룹 프레젠테이션이나 토의활동 등 에세이 이외의 활동은 점수화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평가되고 점수화되었다면 나는 극한의 스트레스에 허덕였을 거다. 단기간에 극복되지 않는 영어로 모든 과정에서 발목 잡혔겠지.
성적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부여된다. 사회과학연구방법론, 연구 주제 개발, 석사 논문 총 세 과목은 A~F로 점수가 부여되었고, 나머지 여섯 과목은 다 Pass or Fail이다. 동료와 등급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점, 자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정도에 따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평가가 너무 고마웠다. 과제를 하나씩 해내고 Pass 될 때마다 묘한 안도감이 쌓였다.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안도감. 내 힘으로 해낸 소소한 성취감들이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조금씩 펴주었다. 과제는 나에 대한 믿음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얀테의 법칙’과 ‘Egalitarianism’의 나라 노르웨이에선 성적도 평균값을 지향하나 보다. 과제 결과물이 보통 수준이라면, 대다수가 평균값에 해당하는 C를 받는다. 학업 역량의 평균값을 C에 고정시키고, 조금 특출 나면 B, 매우 우수하다면 A를 받는 정도다. 만약 스무 명으로 된 한 반이 있다면 10명 정도가 C, 5명 정도 B, A는 1~2명, 나머지는 D 또는 F다. 상대평가처럼 등급별 인원수가 할당되어 있지 않다. 성적표에 나타난 점수별 인원 분포 그래프로 대강 짐작할 뿐이다. 대부분이 C에 몰려있다.
‘관심 국가의 Education for all 정책 전반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에세이를 30페이지 작성하세요.’라고 교수가 과제를 부여하면, 각자 나라를 선택하여 하위 주제로 구체화하고, 정책 분석 및 평가, 제언을 담아 과제를 완성한다. 그 기간엔 매일 열 시까지 도서관에 파묻혀 산다. 동료들보다 두 세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도시락 두 개를 기본으로 하루 종일 공부한 셈이다. 삶은 단조로워도 무엇 하나에 집중해서 파고들 수 있었던 그때가 가끔 그립다. 절대적인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모든 과제를 해냈다. 제출 기한을 넘기지 않았고, 매 과제가 한 번에 통과되었다. 그리고 평균 점수를 받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한 셈이다. 과제 버전을 교체해 가며 수정하고 다듬었다. 고스란히 노트북에 남아있는 그 고생의 흔적들이 새삼스러워 감히 지우지 못하겠다. 과제 제출 후 다음 과목 개강 때까지 1~2주간은 브레이크 타임이다. 그때 보통 인근 도시나 국가로 짬짬이 여행을 가기도 한다. 나는 이런 학기 진행 방식이 무척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