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학기 첫 번째 과목이 끝났다. ‘세계화가 자국의 교육 현실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10쪽 안팎의 에세이를 써내면 된다. 하위 주제나 형식은 학생 스스로 정하면 된다. 아무래도 교사다 보니 교육 정책보다 수업 실천 측면에서 이 주제를 풀어보고 싶다. 교육 현실이라... 단번에 ‘모두 엎드려 자는’ 장면이 떠오른다. 특히 고3 교실이 그러하다. 교사가 수업을 하고 있어도 ‘에어팟을 끼고 인강을 듣는’ 게 현실이니. 교사 따로 학생 따로, 저마다의 세상에서 불통을 몸소 만들어가고 있다.
암기 위주의 강의식 수업에 대한 자성으로 2010년대 중반부터 ‘배움의 공동체’, ‘디베이트’, ‘PBL’, ‘거꾸로 교실’ 등 다양한 수업 실천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왔다. 주로 현장 교사들 중심으로 연구 모임이 만들어졌다. 나 역시 서근원 교수의 ‘아이 눈으로 수업 바라보기’ 연수를 통해 학습자관에 큰 변화가 있었다. 교사의 일방적 가르침보다 아이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그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왜 암기 위주의 강의식 수업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걸까? 모두가 엎드려 자는 교실만 만들 뿐, 시험과 함께 휘발되어 버리는 지식의 얕은 맛 만 보게 할 뿐, 생각하고 나누고 함께 의견을 만들어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다가올 시대가 원하는 인재는 사고하고 창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이지 않을까? 그것이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인재 역량이지 않을까? 세계화가 국제 표준을 지향한다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장려되고 있는 수업 방식을 살펴보면 된다. 나는 그것이 ‘학생의 사고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활동 수업’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한국 내 교사들의 움직임에 주목하였다. 이렇게 가닥을 잡고 과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로 바로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도무지 영어로는 사고 활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영어 따로 생각 따로다. 일단 한글로 먼저 쓰고 번역할 수밖에. 한국에 대한 연구인지라 국내 논문을 많이 찾아보았다. 필요한 부분을 인용하고, 생각을 덧붙였다. 드디어 초안이 나왔다. 이제 번역만 하면 된다.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어랏! 구글 번역기가 있네!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제 도서관 Writing Center에 가서 어드바이스를 구하면 된다. 문장을 좀 고쳐주시겠지! 한 시간 예약을 하고 발걸음 총총 그곳으로 향했다.
뛰용~~~ @@ 그 선생님의 흙빛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완벽히 놀란,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얼굴에서 나는 총체적 난국의 맛을 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보고 조언할지 감을 잡지 못하신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두둥~~~ 이제부터 예약된 한 시간 동안 엉망진창 외계 문장들의 향연이 낱낱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시겠습니다. 첫 문장부터 고치기 시작하니, 결국 십 분의 일도 다 못 끝냈다. 생성형 인공지능도 없던 그 시절, 무턱대고 번역기를 돌리다 괴상한 문장 대잔치가 된 지도 모른 체, ‘이거 할 만 한데?’라고 생각한 내가 아직도 아찔하다.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턴 한 문장씩 스스로 번역할 수밖에. 라이팅 센터 그 선생님의 놀란 표정을 지침으로 삼고. 얇디얇은 문법 실력에 기대어 한 땀 한 땀 수놓듯 번역했다. 남들보다 서너 배 넘게 시간이 소요되는 건 당연지사. 계속하다 보니 은근 패턴이 생긴다. 일단 주어와 술어, 목적어의 위치를 정확하게 잡아 문장 구조를 완성한다. 그 후 번역기를 돌려 보다 적확한 영단어를 찾아 바꾼다. 문법 구조는 내 머리에서, 단어나 숙어 등의 표현은 번역기의 도움을 받는 식이다. 그렇게 초안을 만들어내고, 한두 번 더 다듬어 제출하는 식이다. 그야말로 이중의 삼중, 사중 삽질의 연속이다. 그나마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짧으면 10쪽, 길면 30쪽 정도로 과제가 주어져서다. (웃픈 소리로) 어느 정도 번역 장인이 된 듯하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