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노르웨이 교사들을 인터뷰하다

by 쏭스

문제는 노르웨이 사회 교사들을 어떻게 인터뷰이로 모집하느냐다. 더 이상 현실의 막막함만을 탓할 수 없다. 돌파구를 모색할 시점에 다다랐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논문이란 걸 써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플랫메이트 아이다의 친구 마린이 오슬로에서 사회 교사를 했단다. 파티에서 만난 그녀에게 인터뷰이 모집 안내문을 뿌려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한 명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베네스,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되어 오슬로 서부의 학교 현장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잘 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다 보니, 부모의 높은 기대와 학업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꽤 있단다. 평등 사회 노르웨이에서는 경쟁과 압박이 없으리란 내 막연한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풍요로운 동네의 아이들답게 물질적 빈곤이나 생계 곤란이 아닌, 공부와 운동 등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서 힘들어 한단다. 성공에 대한 기대와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는 구조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과잉행동으로 교실 바닥에 드러눕거나 돌발 행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단다.


베네스 다음부턴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을 했다. 먼저 구글에 Oslo high school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리스트로 나오는 모든 학교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대표 메일 주소를 찾았다. 거기로 내 논문 주제와 인터뷰이 모집글을 해당 학교 사회 교사들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가뭄에 콩 나듯 몇몇 학교에서 회신 메일이 왔다. 연락처 및 일정을 조율하는 여러 번의 교신 끝에 드디어 세 명의 인터뷰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오슬로 OO고등학교의 안나, △△ 고등학교의 뵨과 미디어 교과 교사 캐서린이다.


두 고등학교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슬로에 살고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살아온지라, 로컬들의 근거지인 현지 고등학교에 직접 방문한다는 것만으로도 몹시 설레었다. 내부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특히, △△ 고등학교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동료가 수업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단다. 교실은 언제나 공개되는 것이어야 하며, 수업 중 리더(업무 리더십 교사)가 들어와도 개의치 않고 하던 수업을 이어나간단다. 그러니 내게 자신들의 수업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된단다. 마침 그다음 시간이 캐서린의 수업인지라 자연스레 참관을 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어로 진행되어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수업 분위기와 교실 풍토를 느끼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대단하지 않아도 되는, 반듯하게 계획된 수업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수업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반면 당연한 자연스러움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노르웨이나 한국이나 교실은 교실! 학생은 학생이구나!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역사를 가르치는 뵨은 단연 논문 프로젝트 최고의 인연이 되었다.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그는 돌연 직업에 회의가 들었단다. 그래서 평소 관심 분야였던 범죄학 Criminology을 공부하고, 교직 이수 과정을 병행했다. 오슬로시청 교육 담당 부서에서 행정 업무를 꽤 하다 학교 현장으로 왔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삶의 이력이 다채로운 만큼 그는 새로운 도전과 경험에 열려 있는 사람 같았다. 자기 수업을 참관하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된단다. 더불어 내게 수업까지 요청한다. 2학년 문화인류학 수업에 한국 사회와 문화를 소개해달란다. 사회 교사답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반에 대해 관심이 많다. 뜻밖의 제안이 당황스러웠지만 오케이 해버렸다. 동료 교사로서 수업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거나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일단 해보는 거지 뭐, 이것도 경험이잖아! 등줄기에선 땀이 흘렀지만 얼굴은 짐짓 태연한 척!

작가의 이전글3-2. 한국 교사들을 인터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