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오슬로 △△고등학교 이야기

by 쏭스

△△고등학교의 하루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해가 짧아지는 극야 기간이라 아직도 어두컴컴하다. 학생과 교사들이 통유리로 된 최신식 건물로 들어선다. 밖에서 교실이 다 보이는 구조다. 조금이라도 빛을 더 흡수하기 위해서일까? 실내의 환한 빛이 바깥 어둠을 밝혀주는 듯도 싶다. 수업은 대개 오후 2시쯤 마친다. 입시 학원이 없는 곳이라 학생들은 방과 후면 자유 시간을 갖거나 한두 가지 스포츠에 매진한다. 동네 곳곳의 축구장은 늘 학생들로 붐빈다. 여학생들도 축구에 진심이다. 어둡고 긴 겨울, 일조량 부족으로 우울해지기 쉬운 이곳에서 운동은 특효약인가 보다. 모든 것이 비싼 이 나라에서 유독 저렴한 게 바로 스포츠시설 이용료다.

이 학교에서는 교사 자율출퇴근제가 실시되고 있다. 학교장의 결정이라고 한다. 뵨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면 그에 맞춰 출근한다. 자녀의 아침 등교를 책임질 수 있어서 좋단다. 그날 치 수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한다. 이런 탄력 근무가 가능하다 보니, 육아와 가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단다. 이곳에선 오후 4시면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장 붐빈다. 하루 중 드물게 트램과 지상철(T-bane), 버스가 꽉 차있다.


△△고등학교의 복도는 다음 과목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로 늘 붐빈다. 학급 Home room 개념이 없기에, 저마다 각자의 강의실로 흩어진다. 우리의 대학 수업과 같은 방식이다. 자연스레 담임교사의 역할이랄 게 없어진다. 학생의 교우 관계, 학교 생활, 학업 등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우리와 달리, 스무 명 정도의 학생들을 한 그룹으로 관리하는 ‘컨택트 티처’가 있을 뿐이다.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 부모에게 연락하고, 매주 한 번씩 모여 삼십 분 가량 근황을 나누는 정도다. 대부분 해당 교사의 수업을 가장 많이 받는 학생들로 그룹화되어 있기에, 조종례는 없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수업에서 계속 만난다.

행정 업무는 리더십 과정을 이수한 헤드 티쳐들이 전담한다. 그들은 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 학교 전반의 교사 지원 업무와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이는 승진의 개념이라기보다 다른 영역의 직무 담당이라 보면 된다. 해당 고등학교에 보낸 나의 인터뷰 요청 메일도 헤드 티처 한나가 사회과 교사들에게 전달해 준 것이라 한다. 학생들에게 정서적 문제나 교우 관계로 인한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경우, 학교에 상주하는 전문 심리상담사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이를 보면, 이 학교에서는 교사가 철저히 수업에만 집중하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것만도 벅차다고 한다. 수업 준비와 학생 과제 채점 및 피드백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수업과 관련하여, 확실히 한국에 비해 더 많은 재량이 부여된 것 같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제 고사처럼 모두가 한꺼번에 같은 시험을 치는 일이 없다. 과목별 등급에 할당된 인원수에게만 해당 점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별 성취 수준에 따라 1~7점으로 점수가 책정된다. 따라서 ‘등급별 인원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대체적인 결과를 보면, 대다수가 중간 점수에 몰린다고 한다. 학생들은 친구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친구를 제치고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역량을 높여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이곳 교사들은 한국에 비해 평가 문항 출제 및 채점의 압박은 덜 받고, 수업은 더 재량껏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7단계로 점수화하면 된다. 단, 점수 산출의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피드백 서술이 꼼꼼해야 한다. 학생에게 언제든 자세한 설명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가르친 내용과 활동을 바로 평가로 연계시킬 수 있으니 수업 운영의 밀도는 당연히 높아진다. 반별 편차나 등급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학년․동교과 선생님들과 진도를 맞추거나, 시험 문항을 통일시키고 조율할 필요도 없다.


‘서열화와 선별’이 한국 교육을 옥죄는 틀이라면, 노르웨이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등수와 상대평가 제도를 허물어버린 것이다.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이 시점의 우리에게 무엇이 더 좋을지,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그에 맞는 선택이 필요할 뿐이다. 과연 아이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게 사회 전체를 위해 유용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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