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학기를 앞두고 학생들에게 슈퍼바이저가 배정된다. 연구 주제를 정교화하고 논문을 끝낼 때까지 계속 지도해 주시는 분들이다. 나의 슈퍼바이저 티나는 오랜 경력을 지닌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면 상담 및 피드백 일정을 잡아야 한다. 티나가 먼저 연락해 온 일은 없다. 내가 조언이나 피드백을 요청하면 그에 대해 답해주는 식이다. 요청이 없으면 도움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나? 선생이 독려하고 이끌어주는 한국 방식에 익숙한 내게, 아무런 연락도 없는 티나가 한 때는 야속했다. 너무 무관심한 거 같아서. 나는 쪼임을 받아야 하는 타입인데. 이건 뭐, 자율도 너무 자율이다.
영어로 진행한 노르웨이 교사들과의 인터뷰는 전부 전사하였고, 한국 교사 인터뷰는 한글 전사 후 인용할 부분만 영어로 번역했다. 전사하는 데에만 꼬박 2주일이 걸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초고 쓰기에 들어간다. 물론 한글로 시작한다. 영어 번역본을 티나에게 보낼 작정이다. 여태껏 이 방식대로 했고, 괜찮은 결과를 거뒀기에 다른 방식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비판적 사고는 한글로 쓰고 다듬을 때에만 가능하지, 영어로 무언가를 쓴다는 건 너무 어색하다. 뇌 회로가 정지된다. 지난한 작업과 번역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티나에게 논문 초고를 보냈다. 7월부터 주고받아야 할 연락을 11월이 다 되어서야 한 셈이다. 다음날 바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오슬로 칼 요한슨 거리의 한 카페에서 티나를 처음 만났다. 내가 그녀를 많이 놀라게 한 모양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늦게 연락한 것도 송구한데 논문 자체가 엉망인가 보다. 한글로 쓰고 영어로 번역했다는 말에 한참 놀라고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쏭, 이건 영어로 써야 하는 논문이야. 다시 쓰도록 해. 그리고 네가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어.” 이런 총평을 남기며 내게 전면 재작업을 주문한다. 완성도 면에서도 엉망이다 보니, 제때 논문을 제출하는 것도 역부족. 결국 한 학기를 연장했다.
모두 갈아엎고, 이제부터 영어로 써야 한다.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외며, ‘과연 진짜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해 가며, ‘다른 선택지는 없다. 영어로 쓸 수밖에 없다.’를 가슴에 새기며 한 줄 한 줄 영어로 써 내려갔다. ‘그 전의 무수한 삽질들이 헛된 것만은 아닐 거야. 왜냐면 영어로 못 쓴 거지,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내용은 분명하잖아!’라며 정신 승리의 주문을 매일 되뇌었다. 도서관과 기숙사를 오가며 쓰고 다듬고를 반복했다. 그간의 시행착오가 일종의 노력값으로 진화된 건지, 영어 논문의 틀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논문을 읽고 레퍼런스를 만들어갔다. 불가능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넘보지 조차 못했던 넘사벽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켜가던 그 시절, ‘일단 두드리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시작은 되는 거구나!’를 느껴가던 그 시절. 까마득한 그 시절로 삼십 대 후반이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