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 중요한 건 영어가 아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네 생각이야!’ 첫 과제 피드백에서 테일러로부터 들었던 말. 돌이켜보면 논문에서도 그게 핵심이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메시지가 명확해야 타당도 높은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며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다. 석사 논문은 학술 교류를 위한 연구 과정과 글쓰기 체계, 형식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들었다.
여러모로 뒤돌아보면, 내가 설정한 ‘교사의 경험’이라는 개념이 뭔가 명확하지 않다. 노르웨이와 한국 교사들의 경험을 비교해서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논문의 타깃 독자층이 한국 교사들이라고 밝혔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노르웨이 사례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교사의 경험’ 보다 차라리 ‘교사의 성장’, ‘교사 효능감’을 개념적 키워드로 설정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교사로서의 성장과 효능감 역시 속해있는 사회의 맥락과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브론펜 브레너의 시스템이론을 더욱 정교화할 필요가 있었다.
“쏭, 영어로 다시 쓰도록 해.” 티나의 냉정한 피드백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고, 이건 지금껏 해 온 과제와 다른 거구나. 이제 막다른 길이구나. 영어로 쓸 수밖에.’ 번쩍 든 정신으로 comfort zone을 뛰어나왔다. 울며 먹는 겨자여도 꾸역꾸역 삼켜온 게 있었기에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써낸 논문, 이제 디펜스만 남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마비되었던 그 해, 학교는 폐쇄되었다. 급기야 논문 디펜스마저 온라인 줌미팅으로 진행되었다. 화면 너머 두 명의 논문 심사자, 말없이 이 과정을 참관만 할 수 있는 나의 슈퍼바이저 티나, 총 네 명으로 분할된 줌 화면이 내 모니터를 꽉 채웠다. 예전 핀란드 대학원 스카이프 면접의 악몽이 떠오르는 듯하다. ‘대면이면 입 모양도 잘 보이고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잔뜩 긴장한 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심사자들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을 때는 다시 말해달라고 하며, 내 논문을 적극 디펜스했다. 한국의 현직 사회교사로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하여 왜 다른 사회와 환경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지, 노르웨이와 한국 양국은 서로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참고할 수 있는지, 평가 제도가 교사들의 교육 실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하여 쏟아냈다.
디펜스가 끝난 후, 심사자들은 최종 점수를 책정하기 위해 나를 잠시 줌 화면에서 나가게 했다. 이십 분이 지나 나를 다시 줌으로 초대한다. “쏭, 수고했어. 너의 언어로 설득력 있게 잘 말했어. 그래서 너의 최종 점수는 ○야. 축하해.”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높은 점수다. 화면 너머 티나가 웃는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티나로부터 왓츠앱 전화가 왔다. “쏭. 축하해. 심사위원들이 네가 논문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는 것 같아. 네가 인용한 자료들도 좋았다고 해. 너 스스로 내용을 파악해 가며 논문을 써냈다고 말하더구나. 수고했어, 정말 축하해.” 티나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덩달아 뭉클해진다. 논문을 갈아엎으며 수많은 피드백과 수정을 거듭해 온 우리의 작업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