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보 발령이 났다. 한층 성숙한 아이들과 교과 수업으로 정신없던 5월 무렵, 핀란드로부터 반가운 메일이 왔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단다. 꿈인지 생시인지, ‘설마 이게 되겠어?’란 심정으로 두드려 본 낯선 세계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유학 업체를 통하지 않고 혼자서 낑낑대며 서류를 다듬고 고쳤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 CV, 증빙 서류들을 영어로 만들고 공증 작업까지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뿌듯함이야 말해 뭐 하리.
이제 하나만 더 통과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영어 면접이라는 거. 매번 아이엘츠에서 어그러진 것도 스피킹 때문이었는데, 아...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스카이프 너머 저 멀리 핀란드 교수들의 질문을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부딪혀 볼 수밖에. 일단 죽이 되었다. 그것도 엄청 높은 벽맛의 죽. 노트북 너머 지구 반대편 면접관들의 질문을 도통 알아먹을 수 없다. 리스닝 시험과 달리 실제 상황에서의 듣기는 전혀 다른 맛이다. 엉망진창 맛의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나버렸다. 입을 떼고 무언가를 말하긴 하는데, 나도 모를 말들을 그저 남발하고 있는 나를 보는 정신없는 나. 유체이탈 상태로 아무 소리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나를 보는 나, 3차원 입체 서라운드 시점으로 스스로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진 순간을 맛보았다. 아, 이럴 때 흐르는 땀을 진땀이라고 하는구나.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외계어로 면접관들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다. 내가 너무 창피하고 한심스럽다.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합격 안 시켜줘도 되니까 어서 빨리 끝내달라고 마음속으로 한가득 빈다.
예상대로 똑 떨어졌다. 그렇게 핀란드는 내게 죽이 되어버렸다. 아... 다음 해부터 핀란드 정부가 비 EU 학생들에겐 학비 유료화 정책으로 전환한다던데... ‘나는 안 되는 거구나. 안 되는 거였어 ㅠㅠ.’ 높은 벽 맛만 진창 맛본 체 끝나버렸다. 아... 그런데 웬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