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도시락(matpakke)이 당연해.

by 쏭스

소고기 미역국을 끓인다. 고춧가루와 마늘, 당근과 양파, 파를 넉넉하게 넣고 배추를 겉절이 한다. 다진 소고기로 양념 불고기를 만든다. 이거면 삼일 간 아침은 끄떡없다. 마늘의 칼칼함이 속을 얼얼하게 달래 줄 테니! 전투에 나서기 위한 채비마냥 마늘로 온몸의 기운을 북돋운다. 한국인에게 마늘과 고춧가루는 힘이 쌔다.

이제 도시락을 쌀 차례. 점심은 간단한 샌드위치, 저녁은 볶음밥과 비빔밥 중 하나. 주 메뉴를 가장 큰 통에, 과일은 중간 통, 견과류는 작은 통에 담는다. 간간히 먹을 달콤한 쿠키도 넣는다. 어느새 이케아 도시락 통 5개가 꽉 찬다. 손수건으로 고정시키면 끝! 하루 종일 마실 커피는 라떼로 만들어 간다. 이로서 내 가방은 아이패드와 연습장, 도시락통들로 꽉 찬다. 책가방이라기보다 도시락가방이라고 해야 맞다.


제 한 몸 먹이기 위해 손수 준비하는 이 정성, 태어나서 처음이다. 사 먹지 않고 내가 준비해 가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되었다. 외식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곳 친구들도 그리 외식을 자주 하는 건 아니란다. 비싸기 때문이다. 막상 사 먹어 봐도 음식이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덜 든다. 한국인의 입맛을 충족하기엔 이곳 음식들이 좀 밋밋하다. 학교 칸틴에서 몇 번 사 먹다가 결국 접었다. 그냥 내가 싼 도시락을 먹는 게 가성비도 맛도 챙기는 길. 하하.


나름 내 도시락도 히스토리가 있다. 첫 학기 땐 볶음밥, 주먹밥, 비빔밥, 김밥, 다양한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 등 온갖 것들을 시도했다. 그러다 이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현지화되는 건가? 통밀식빵에 브라운치즈와 버터, 블루베리 잼만 바르면 끝. 심하게 간편하다. 그저 허기만 면하면 되는 정도.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을 닮아가나 보다.


노르웨이는 matpakke라는 간편 도시락 문화가 국가 차원에서 장려된다고 들었다. 겨울이 길고 어두우니 햇빛이 부족한 이곳에서는 농사가 발달되지 못했다. 감자 이외엔 대다수 농산물을 수입한다. 다양하지 못한 식재료 때문인지 음식 문화가 대단히 발달한 것 같지 않다. 뭐랄까? 한국만큼 먹는 것에 대단히 진심인 건 아니랄까? 내 인터뷰이 뵨은 식빵 사이에 사과 슬라이스를 끼워 점심으로 먹었다.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저걸 저렇게 맛있게 먹다니 놀라울 수밖에.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일 그 자체가 주는 뿌듯함이 있다. 배고프지 않은 하루를 미리 준비하는 일의 정성, 언제든 허기질 때면 꺼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는 마음. 김밥 한 줄, 떡볶이 한 그릇, 싸고 맛있는 음식을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한국에서 자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락 문화.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하루치의 먹거리를 준비하며 집 밖으로 향하던 내가 왠지 아련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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