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바지 밑단을 자르고 올이 풀리지 않게 휘갑치기를 한다. 늘어난 맨투맨 티 밑단도 잘라버린다. 이참에 겨울 재킷까지 건드려본다. 어깨뽕을 빼고 팔 길이까지 줄이는데 성공! 급기야 대바늘로 목도리까지 짠다. 뜨개질은 춥고 어두운 이곳의 겨울을 버티게 하는 든든한 취미가 되었다. 온갖 잡생각들을 뒤로한 채 계속 손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단순 반복 행위가 주는 몰입감이랄까? 노르딕 패턴 스웨터까지는 멀었지만, 북국의 긴 겨울을 한 올 한 올 뜨개실로 채우는 맛이 뭔 줄 알겠다. 진한 빨강과 푸른 보라색 털실로 목도리를 두 개나 짰다. 뜨개질 초보용 유튜브 영상을 무한히 돌려보며, 풀고 또 풀고를 반복한 끝에 완성했다. 마음에 쏙 든다. 헬싱키에서 산 빈티지 코트에 두르니 딱이다.
이 모든 건 오슬로에 와서 난생처음으로 해본 나의 DIY 목록이다. 수선집을 찾기도 힘들거니와 인건비가 높아 감히 얼마가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재밌다. 유튜브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들어 수없이 화면을 돌려가며 방법을 익히고 있다. 우둘투둘하지만 내가 한 것이다 보니 괜스레 뿌듯하다. 얼핏 보면 봐줄 만하다. 수선은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었다. 간혹 빈티지 옷을 원하는 스타일로 바꿔 입으려 수선을 맡겼을 때, 원하는 핏이 아닌 데서 오는 실망감을 맛본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선지 직접 내 손으로 고치는데서 오는 쾌감이 상당하다.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처박아 두었던 운동복이 있다. 처음 살 때부터 내 다리에 비해 긴 바지였다. 그럼에도 넉넉한 핏감으로 굵은 허벅지를 커버해 주니 차마 버리지 못했었다. 몇 번 질질 끌어가며 입다가 결국 옷장으로 직행. 볼 때마다 ‘괜찮은 바진데 너무 길어서 입기엔 불편하구나.’란 생각만 십몇 년째. 그 사이 한 번도 ‘밑단을 자르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밑단을 자르고 꿰맸다. 감쪽같다. ‘길어서 못 입는 바지’가 ‘길기에 잘라 입는 바지’가 되기까지 십 수년이 흘렀다. 내 입 맛에 맞게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일, 상념마저 싹둑 잘려 나가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해진다. DIY가 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