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며느리였어도 내 친구야.

by 쏭스

메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 그녀의 전 며느리, 즉 빅터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메타는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다. 분명 캐럴로부터 빅터의 부모님이 최근 이혼했다고 들어서다. 그런데 ‘시어머니였던 사람에게 선뜻 전화해서 안부를 묻다니?’ 놀랍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아들과 이혼한 며느리를 친구처럼 대하다니,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 아닌가?


메타는 아들의 이혼 후에도 며느리와 잘 만난다고 한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왕래하는 사이다. 최근 빅터의 엄마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겨 축하해 주기까지! 아들과의 인연이 다했을 뿐이지 자기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기를 원하는 마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보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고 할까? 오고 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찡해진다. 노르웨이식 인연의 정수인 걸까?


빅터는 아빠의 연인이 마땅찮다. 그럼에도 아빠의 사생활이기에 선뜻 표현은 하지 않는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원망이 덜 한 듯하다. 설사 그런 마음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하는 자세가 뭔가 쿨 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이게 바로 서양식 개인주의의 면모인가?


캐럴의 고향은 대도시 스타방에르 인근의 비교적 작은 도시다. 그만큼 가십과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곳이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고, 갑갑함을 느낀다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곳 아니겠는가? 한편, 캐럴처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는 법. 그래서 더욱 아이를 낳고 싶어 했나? 든든한 울타리로써의 가족은 소도시에서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지지대가 될 테니. 여기서 눈에 띄는 건, 가족이 꼭 혈연 기반에 묶여있지는 않다는 거다. 전 며느리, 친구의 부모, 엄마의 남자친구, 아빠의 또 다른 아들, 남자친구의 할머니 등 인연에 기반한 관계망이 느슨하게 연결된 모양을 띄고 있다.


눈 쌓인 겨울밤, 고립되고 우울해지기 쉬운 이곳에서, 혹독한 환경을 견디게 해주는 건 결국엔 사람인 걸까?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망으로 서로를 품어주게 되는 걸까? 생각보다 훨씬 더 공동체주의적인 면모가 강한 사회가 바로 노르웨이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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