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노르웨이식 인연의 확대는 어디까지인가?

by 쏭스

이듬해 여름, 또다시 캐럴의 초대를 받았다. 파트너 빅터의 할머니, 즉, 메타가 나를 보고 싶다 신다. 그 사이 메타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빅터의 아버지, 즉 아들이 시공한 최신식 건물로 터전을 옮기셨다. 계단이 없고, 두 면이 통유리로 개방된 최신식 건물이다. 혼자 사시는 고령자에게 이런 투명 구조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신 걸까? 주변에서 오고 가며 안부를 챙길 수 있으니? 한적한 마을의 끝집이라 가능한 구상일 것도 같다.


원래 메타는 인적 드문 마을의 숲 속에 사셨다. 울창한 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잔디 정원이 포근히 감싸주는 더없이 평온한 집이다. 남편과 함께 가꾼 그 집을 더 이상 홀로 관리하기 벅차고, 불편한 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여의치 않아 이사를 할 수밖에 없으셨단다. 철마다 잔디를 관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 한국인인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소식 하나. 바로 메타의 옛집에 캐럴의 아빠가 들어가 사신다는 것.


캐럴의 부모는 그녀와 오빠가 어릴 적에 이혼하셨다. 그 후 각자 새 파트너와의 사이에 아들을 한 명씩 더 두었다. 그로 인해 캐럴에겐 열 살 정도 되는 배 다른 남동생이 두 명 있다. 모두 캐럴이 청소년기였던 시절에 태어났다. 엄마와 살았기에 엄마 쪽 동생 샌빅을 더 애틋해하지만, 아빠 쪽 동생 역시 잘 챙긴다. 동생들이 태어날 무렵,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지 않았냐 물으니 외려 더 좋았단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뭔가 발상의 전환이랄까?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는 누군가의 복잡한 가정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곳, 그래서 쉽게 상처받아 드러내기 어려워지는 곳, 배다른 동생이 두 명이나 있다는 말을 쉽게 하기 힘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그게 별 일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의 멘탈리티는 얼마나 다를까? 선을 긋고 배척하느냐? 관계의 확장으로 보느냐? 물론, 저마다의 사정은 모르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쉬쉬하며 숨길 일이 아닌 사회도 있다는 게, 잠시나마 살았던 노르웨이에서 눈 뜬 무언가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이 되어야 하는 건데?’


내 관찰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듯하다. 어릴 적 유치원부터 함께 다닌 사이여야 진짜 친구라고 말하는 걸 몇 번 들었다. 나이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단다(물론 한국도 마찬가지) 캐럴이 누구에게든 베스트 프렌드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다 역시 어릴 때 이웃집에 살면서 유치원을 함께 다녔단다. 이렇게 친구 사귀기 힘든 나라에서, 파트너십과 결혼 등으로 맺어진 새로운 인연은 일종의 확대 가족 개념이 된다. 그래서 메타가 자신의 옛 집을 캐럴(손자 빅터의 파트너)의 아빠에게 내어줄 수 있었던 거다. 손기술이 좋으셔서 메타의 집을 수리하고 관리해 주시기로 약속하고 말이다. 그 덕에 캐럴의 아버지는 오슬로에서 일하시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셨단다. 이렇게 캐럴은 고향에서 가족의 바운더리를 점점 더 확대시키고 있다.


캐럴은 엄마에게 한시라도 바삐 새 파트너가 생겼으면 한다. 이미 성인이 된 오빠와 열렬히 엄마를 지지하고 있다. 동생인 샌빅의 아빠와는 헤어진 지 오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샌빅이 아빠집으로 갈 때 데려다 주기에 마주칠 일이 있으시단다. 아직 미성년인 샌빅은 정기적으로 엄마와 아빠의 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내게 노르웨이식 인연의 확대를 맛보게 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샌빅의 아빠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한 것! 멀리서 손님이 왔으니 타코를 대접하고 싶으시단다. 이곳에선 금요일을 보통 ‘타코 데이’라 부르며 한 상을 거하게 차려 먹는다. 갖가지 재료를 취향 껏 준비해서 또띠아 랩으로 싸 먹으면 맛있다. 만들기도 쉽고, 맛도 있고! 친구 동생의 아빠가 차려주신 정성스러운 타코를 먹는 이 조합! 아들인 샌빅, 전 파트너인 샌빅의 엄마, 샌빅의 이복 누나 캐럴, 캐럴의 친구인 나까지 대접해주신 거다. 풍미 가득한 여러 재료로 맛낸 타코처럼 여러 무늬의 관계가 만들어낸 이 조합, 정말 신선하다! 노르웨이식 인연의 확대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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