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굳이 나이를 왜 물어?

by 쏭스

여름의 신선한 에너지가 한창인 이곳, 8월의 오슬로대학교 캠퍼스는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로 붐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가 뒤섞여 청량한 공기를 뿜어낸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엔 Language Exchange 행사가 좋다. 새로운 언어도 익히고,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만나기에 딱이다. 한류 덕택에 어딜 가나 한국어를 배우고픈 학생들이 있다는 것도 다행.


여기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메리를 만났다. 역사와 동양어문을 공부하는 학부생이다. 한국어와 중국어 등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고, 대학원 과정도 밟을 예정이라고 한다. 6개월 정도 서울에서 어학당을 다녔단다. 그래선지 언어 교환뿐 아니라 한국과 노르웨이 두 사회에 대한 속 깊은 사정까지 참 많이도 얘길 나눴다. 노르웨이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친절하고 명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눠준다. 무상 교육과 의료 등 복지제도가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눈이 한가득 쌓인 겨울의 골목길을 집집마다 나와서 쓸어야 하는 이유, 그렇지 않을 경우 받는 차가운 눈총, 그런 이유로 형성되는 일종의 노르웨이식 공동체주의, 이웃이 내는 세금이 얼마 인지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는 것, 세금을 많이 낼수록 공동체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는 것, 그런 연유로 일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석유 산업이 발달한 서쪽 사람들이 보기에 돈만 축내는 오슬로 사람들이 다소 얄미운 깍쟁이 이미지라는 것 등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왜인지 메리는 처음 봤을 때부터 유독 편하고 친근했다. 이런 게 인연인 걸까? 영어 울렁증과 대인 기피증이 메리 앞에선 나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매주 금요일, 서로의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모였다. 만나서 무얼 했나? 주야장천 이야기만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계 등 주제를 망라하고 계속 말했다. 대화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이 흐를 새도 없이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했다. 가끔씩 학교를 벗어나 오슬로 곳곳을 걸었다. 송스반 호수와 오페라하우스, 비겔란 공원 등 시내 곳곳을 걸어 다녔다. 물론 온갖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그날의 우리를 누군가가 필름으로 찍고 있다면 시스터 후드 버전 <비포 선셋>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틈나는 대로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그럴 때면 메리에게 여행담을 전해주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그 역시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곳곳을 다녀서 인지 유독 여행 얘기만 하면 에너지가 배가 되었다. 경계 너머의 삶을 꿈꾸고 실행하는 자들끼리의 시너지랄까?


이런 메리와 나의 관계는 한국에서라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이차가 많기 때문! 학부생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열 살 넘게 차이 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길 나누면서도 서로의 나이를 한 번도 묻지 않았으니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물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나이부터 묻고, 그래서 이름보다 호칭으로 부르는 게 익숙한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기에 나이를 물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언니, 오빠, 동생, 선배, 후배 등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행위 양식이 덜 작동하는 것 같다. 높임말과 낮춤말이 없는 영어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평등 문화도 한몫하는 거겠지? 이런 게 언어가 빚어내는 문화인 건가? 그래서 좀 더 쉽게 노소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언니’로 호명되는 그 순간, 그 지위에 기대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회적 자아가 발동되어 베풀고 품어주고 보살펴 줘야 할 것만 같은 역할 강요가 느껴진다고 할까? 자유롭지 않았다. 좀 더 오롯한 나로 말하고 싶다. 나이를 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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