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어디서 왔는가 보다:

다양한 노르웨이인이 존재해

by 쏭스

대학원 수업 첫날, 낯선 얼굴이 뚜벅뚜벅 들어와 옆자리에 앉는다. 그의 이름은 해리, 오리엔테이션에 나오지 않아 오늘 처음 본다. 내 영어가 더듬거려도 귀담아듣고 묻는 말에 조곤조곤 답해준다. 극 외향형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만 같은 첫날, 차분하게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해리가 왠지 편해 보였다. 우리는 주로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함께 듣고,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싱긋이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동기들과 어울리는 일 없이 주로 수업에서만 본다는 점에서 조용한 단독주의자로서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내향적 노르웨이인의 전형인 걸까? 외려 그런 면이 내게 은근한 위로가 되었다. ‘여기 단독자로 행동하는 동기도 있네! 그래도 되는 거구나.’ 굳이 어울리려 애쓰지 않는 모습에서, 그간 꽤나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가 눌려있었구나 싶었다. 그 덕에 ‘그냥 내 에너지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거다.’라고 되뇔 수 있었다.

두 번째 학기, 질적 연구 방법론을 배우며 인터뷰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퇴사의 이유>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와 같은 질적 연구 기반 책들을 재미있게 읽던 터라, 모처럼 적극성을 발휘했다. 무작정 해리에게 인터뷰이가 되어줄 것을 청했다. 한국과 노르웨이 사회 교사들의 경험에 관여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연구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품고 있을 때, 노르웨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서다. 씨익 웃으며 응해주는 해리, 고맙다! 그간 뒷자리 메이트로 쌓아 온 은근한 우정의 발현이다. 도서관 세미나 룸을 예약하고, 준비해 간 질문지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물었다. 마침 나딘도 인터뷰 과정을 보고 싶다기에 함께 했다.


해리는 노르웨이인 엄마와 라이베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부색이 검은 노르웨이지언이다. 실업계 트랙을 밟다가 인문계로 경로를 변경했다. 노르웨이는 한 학교 내 인문계와 실업계 트랙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와 달리, 이곳에서는 기술을 배워 바로 취업하고자 하는 경우도 꽤 된다. 해리처럼 트랙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 전환이 어렵지 않다. 가족 중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기술을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으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 선생님의 영향으로 문득 공부가 하고 싶었단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교육학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교육을 통한 사회 재건이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해리는 아버지의 나라 라이베리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현지 조사를 떠났다. Global South의 교육 정책 개선에 관한 연구를 기반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


솔직히, 해리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노르만계 백인의 나라에서 다른 피부색을 지닌 노르웨지안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고충, 차별 등에 대하여 묻고 싶었다.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 갔으나 조용히 접었다. 왜 선뜻 꺼내놓지 못했을까? 머릿속에 맴돈 질문은 그 후에도 발화되지 못했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혼혈 가정의 자녀 해리와 내 플랫 메이트 다니엘은 모두 노르웨이지언이다. 다른 게 있다면 피부색. 라이베이라계 아버지를 둔 해리와 룩셈부르크계 아버지를 둔 다니엘은 아마도 다른 경험들로 자라왔을 것이다. 둘에게 Where are you from? 의 의미는 같을까? 어느 정도의 빈도로 물어졌을까? ‘I am Norwegian.’이라 대답할 때 드는 기분은 비슷할까? 모두에게 ‘I mean,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Where is your ancestor from?’이라는 질문이 추가되었을까? 유럽에 살며 미묘하게 받아들이게 된 질문이 ‘where are you from?’이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끊임없이 자기를 설명해야 한다. 공평하지 않다.


노르웨이가 더 이상 백인들만의 나라가 아닌 이상, 한국도 더 이상 한민족만의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섞여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보다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해리와 같은 다양한 노르웨이 인들이 있듯 다양한 한국인이 있으니. 어디서 왔는가 보다 더 대화를 의미 있게 채워갈 질문부터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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