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합격자 발표 후, 7월 출국, 8월 대학원 학기 시작이다. 그 사이 전셋집을 처분하고, 오슬로 기숙사를 신청해야 한다. 학생 비자 신청하랴, 교육청 제출 서류 공증하랴 해야 할 일들이 꽤 많다. 그 사이 이삿짐 처리 수준의 집정리도 내 몫이다.
전기장판과 밥솥, 엄마의 양념들, 각종 문구류와 웬만한 옷가지들을 끌어 모아 이민가방과 캐리어, 백팩에 한가득 싣는다. 타이베이와 방콕을 거쳐 오슬로로 가는 머나먼 여정.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서야 비로소 창 밖 엄마 얼굴이 들어온다. 엄마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이 터진다. 멀리 가는 딸이 처음인지라 엄마는 온 얼굴 가득히 울고 있다. 울고 있는 그 얼굴에 나는 무방비로 슬퍼진다. 잘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서른 중반의 딸이 유학길에 오른다고 하니, 얼마나 말리고 싶었을까.
서른 중반,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나이. 소셜미디어는 더 이상 포스팅이 아닌 눈팅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일상의 순간을 예쁘게 편집해서 올리는 나이가 지나버린 것 같다. 결혼과 출산에 다다르지 않는 나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게 사회적 압력이란 건가? 한국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표준에서 벗어난 이에겐 어김없이 뭔가 잘못되었거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덫이 씌워진다. 아니 어쩌면 그 규정을 벗어난 이 스스로가,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한 체, 틀 안에 자기를 가둬버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점점 더 움츠러든다. 방어적 인간의 탄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유학은 우주로켓 발사 같은 일이다. 원하지 않게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그것도 교직 사회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미국도 영국도 아닌, 늘상 뉴질랜드와 헷갈려하는 그곳 노르웨이로. 보편의 잣대에서 벗어난 서른 중반의 여정이 시작된다. 엄마와 헤어지는 건 슬프지만,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학교 생활에서 벗어난다. 그간의 여행들이 내게 새로운 경로(wayfaring)로 이끌어 준 셈이다. 7월의 마지막 날, 생일에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