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슬로 가는 길. 루시스미스

by 쏭스

오슬로행 편도 티켓은 타이베이와 방콕을 경유하고도 8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웬만한 왕복 티켓에 버금가는 금액이지만 급하게 끊어서 어쩔 수 없다. 공항 체크인 창구에서 짐을 부치려는데, 어머나! 수하물 최대치 30kg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도 무려 60kg. 나도 참 대책 없지. 무게도 재보지 않고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쑤셔 넣어댔으니. 초과 1kg당 5만 원이라는 말에 머리가 노래진다. 이걸 어쩌나. 신이시여. 정녕 인천공항에 짐을 다 버리고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야말로 멘붕. 계획성 없는 자가 맞이하는 치명적 대가다. 비행기 티켓보다 더 비싼 수하물 초과비… 아… 나는 왜 30kg 제한을 알면서도 미리 무게를 체크하지 않았던가? 집에 저울이 없다면 빌려서라도 재봐야 하는 건데. 알아도 범했을 무대책이라기엔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닌가? 물가 비싼 나라에 살러 간다는 미명 아래 온갖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싼 게 화근이다. 심지어 샴푸까지도. 그러니 한정 없이 초과되지.

살아날 방도는 있나 보다. 항공사 직원이 공항 우체국에서 EMS 택배를 이용할 수 있단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다. 만약 새벽이었다면 어쩔 뻔했던가. 당장 입을 일 없는 겨울 옷과 책을 쫙 펼쳐 놓고 30kg 한 상자를 꽉 채운다. 1kg당 1만 원이다. 1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이는데 성공. 하하… 성공… 땀나는 성공이다. 그런데 노르웨이 어디로 붙이지? 기숙사는 도착 후 SiO 사무소에 들러 배정받는 형식이라 주소가 없다. 딱 한 군데 빼고. 바로 루시 스미스! 합격자 메일에 찍혀 있던 오슬로대학교 입학처 건물 이름. 물불 가릴 게 뭐랴? 일단 그리로 보낸다. 루시스미스, 제발 받아줘.


‘Attention, please. Passenger, Ms. OO’ 나를 부르는 파이널 콜이 울려 퍼진다. 타이 항공 카운터가 닫히기 일보 직전, 힘들게 검색대로 들어갔다. 하, 그런데 또 삑~하고 울린다. 백팩에 넣어둔 밥솥을 열어보란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직접 말려서 만든 태양초 고춧가루다. 순간 울음이 터져버렸다. 뺏길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인지, 수하물 생쑈로 기가 쫙 빨려서인지 너무 힘든 거다. 한 고비 넘어 또 한 고비.


다행히 검색 요원이 아무 말 없이 통과시켜 준다. ‘뭔지 안다. 외국 생활 잘해라’는 듯 안쓰러운 위로의 표정이다. 멀리 나가는 한국인들을 그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을까? 미지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바리바리 싸매고 가는 내 모습에 서럽게 데워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계속 눈물이 난다.

타이베이 공항에서 한 번 더 밥솥 고춧가루가 걸렸지만, 한국인에게 이 빨간 가루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 듯하다. 가까스로 패쓰~ 방콕에선 무사히 통과, 드디어 오슬로에 도착했다. 멀고 먼 이틀 간의 여정이었다. 물론, 한 고비 더 남았다. 바로 루시스미스.


비행기 안에서 여차저차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하는 장문의 글을 합격자 메일 답신글로 썼다. 일주일 후 거대한 박스 하나가 사우스 코리아로부터 도착할 거고, 알려만 주면 즉시 찾아가겠다고 말이다. 이역만리 물 건너온 EMS 박스는 너덜너덜해진 체로 루시스미스 2층 입구에 턱 하니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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