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이주를 준비할 때 노트북을 새로 장만해야 하나 고민했다. 5년 정도 되긴 했지만, 평상시에 학교 노트북을 주로 썼던지라 크게 사양이 모자라거나 고장 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논문과 이북을 볼 용도로 아이패드를 장만했다. 아뿔싸! 막상 와서 보니, 노트북이 영 시원찮다. 당장 과제를 해야 했던지라 아이패드를 꺼냈다. 그런데 논문 저장 프로그램 조테로와 페이퍼 3가 깔리지 않는다. 논문도, 인용도, 프로그램도 다 낯설다. 이리저리 낑낑거리며 애를 쓴다. 모든 게 어려운 거 투성이다. 아래아한글만 주야장천 썼던지라, MS워드도 낯설다. 세계인들은 이미 MS워드와 구글닥스 위주더라. 네이버가 아니라 구글로 검색하고, 카카오톡이 아니라 페이스북 메신저와 왓츠앱으로 소통하고. 뭔가 우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개구리 같은 기분이랄까? 날마다 낯선 것들 투성이에 애먹고 있을 때, 아이패드마저 안 되니 짜증이 한껏 올라왔다. 옆에 앉은 나딘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나딘,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알아? 도무지 모르겠어. 어려운 거 투성이야.” 그러자 대뜸 그가 묻는다. “그거 얼마니?”... 작동법을 묻는 내게 가격을 묻는 나딘, 전혀 예상 밖의 리액션이다. 순간 멈칫한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서용으로 산 백몇십만 원짜리 아이패드가 그에겐 꽤나 큰돈 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칠 뿐이다.
명석하고 다부진 나딘을 보며,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인격보단 그의 출신국이 어디냐로 먼저 범주화되고 정체화되기 쉽다. 자칫 무례함과 차별의 렌즈를 끼기 쉬워지는 구조. 무지를 가장한 무시를 남발하기도 당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이나 생각보다 그의 배경이나 국적에 기반 한 선입견이 먼저 깔린다. 그래선지 나딘에게 왜 노르웨이로 석사 유학을 왔는지, 어떻게 비싼 물가를 감당하고 있는지, 장학금을 받고 있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묻지는 못했다. ‘너는 생활비를 어떻게 조달하니?’를 영국계 백인인 티나와 네팔인 나딘에게 물을 때, 그 결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내 편견인가? 맥락의 차이가 실재하는 것인가? 국적에 따른 일종의 전제가 깔려 있기에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질문이 누군가에겐 호기심 어린 무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너무 민감한가?)
네팔에서 온 나딘은 전직 중학교 교사다. 영어에 매우 능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말한다. 그런 그가 신기하고 부럽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기함의 이면에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잘할 수 있지?’라는 멍청한 우월의식이 깔려있고, 부러움은 내 부족한 영어 실력과 한참 비교되어서다.
나딘에 의하면, 네팔의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싼 대신에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기에 인기가 많단다. 반면 공립학교는 교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시골로 갈수록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렵단다. 히말라야 기반 관광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여서, 영어에 능통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단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인도와 문화권이 겹치기도 해서, 네팔에서는 영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외려 그는 네팔의 이러한 영어 편중 현상을 ‘영어 제국주의’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건 슬픈 현실이야, 쏭. 네팔어가 있지만, 영어를 더 중시하는 거 말이야. 영어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뿌리가 흔들리는 일이기도 해. 아직도 네팔에선 영어 제국주의가 작동하고 있어.” 자국어가 있음에도 영어를 더 중시하고, 영어를 기반으로 해야 관광업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들추어내는 그의 시선이 예리하다.
날카로운 사유를 자신감 있게 영어로 표현할 줄 아는 나딘을 보며 나는 왜 신기해했을까? 조금 더 부자 나라 출신인 내가 가난한 나라 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하고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특정 국가와 가난, 인종, 민족에 대한 내 안의 편견을 보게 해 준 나딘. 그는 지금 석사를 마치고 노르웨이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아내와 자식까지 전 가족을 모두 이주시켰다.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린 그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