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쓰엉을 생각한다.

by 쏭스

첫 학기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 주간, 한 해 먼저 입학한 선배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과에서 준비한 핑거 푸드와 음료를 먹으며,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았다. 단, 스탠딩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옮겨 다니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보니, 평소보다 높은 텐션과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기가 쫙 빨렸다. 영어라는 장벽과 내향적인 성격으로 쭈뼛거리던 그때, 베트남에서 온 쓰엉을 만났다. 나보다 한 해 먼저 입학한 동양인 친구이기에 뭔가 모를 친숙함을 느꼈나 보다. 선뜻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쓰엉, 난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그래서 이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돼. 괜찮을까? 해보니 어땠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쏭. 영어에 관해선 누구나 상황이 다르고, 이 과정의 교수들은 그런 걸 다 감안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고 있잖아. 힘내.”

브로큰 잉글리시로 잔뜩 주눅 들어있던 그때, 과연 이런 상태로 학위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헤쳐 나갈 앞날이 너무 막막하던 그때, 쓰엉의 응원과 조언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날 본 게 다였는데, 그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음 해 여름, 학기 연장 없이 그가 제때 논문을 제출했단다.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무렵 나는 논문을 시작해야 했지만 슈퍼바이저와의 연락마저 피할 정도로 막연함에 짓눌려있었다. 그래선지 그의 논문 제출 소식이 내 일인 마냥 기뻤다. 베트남으로 귀국하기 전, 아케브뤼게의 어느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영어로 글 쓰는 것의 어려움, 슈퍼바이저에게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지,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문 주제를 어떻게 정했는지 등 이것저것 물었다. 이제 논문을 시작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쓰엉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한 조언이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무사히 끝낸 사람이 주는 에너지를 크게 느꼈다.


어림짐작해 보면 그녀는 나보다 열 살 정도가 어리다. 그런 그녀를 한국에서 마주쳤더라면, 우리는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린 베트남 여자가 한국 사회에서 의미하는 맥락이 있지 않나? 은연중 어떤 필터를 씌워 바라보지 않았을까? 쓰엉이라는 한 인격으로 마주하기보다 ‘베트남 사람’으로 일반화하지 않았을까? 은근한 무시와 차별이 깔린 어떤 시선으로.


서구권에서 살며 깨닫게 된 한 가지가 있다. 이곳에선 베트남인이건 한국인이건 다 같은 아시안이란 거다. 내가 개체로서가 아닌 ‘그들 집단’으로 대상화될 수 있다는 감각을 체화하는 것은 어쩌면 타국살이의 서글픈 일면이다. 한편, 내 안의 평등과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조금씩 일깨워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냐, 같은 아시아라도 엄연히 한국이 훨씬 더 잘 살아. 나는 더 나은 아시안이라고.’라는 내 안의 똬리 튼 외침은 소리 없이 묻힌다. 다분히 차별적인 시선이 깔려있기에 입 밖으로 꺼냈다간 나만 우스운 인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력 규모로 ‘급’을 나누려는 한국식 국가 순위가 여기선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인이건 베트남인이건 제 나라를 벗어나 이주자 집단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모두 매한가지다. 그 안에서라도 위계를 나누려는 건 어쩌면 우리 안의 못난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의 발현일지 모른다. 한국인의 ‘종특’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우스운 인간이 되기 일보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우열의 잣대를 은근히 드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쓰엉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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