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I don’t think so.라고 말하는

by 쏭스

브라질에서 온 지젤은 큰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적극성으로 덩달아 주변 사람들까지 생동하게 한다. ‘브라질’ 하면 연상되는 ‘정열’이라는 키워드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미지를 지녔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일단 말하고 본다. 감정과 손짓, 몸짓을 동원하여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며, 언제 어디서건 그곳의 분위기를 장악해 버린다. 어느새 좌중은 그녀에게 압도되고 만다. 지젤의 에너지란! 동갑 나기로서,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는 애환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는 사이라 마음이 갔다.


그런 지젤과 관련하여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수업에서, 교수의 발언에 대해 손을 들고, “I don’t think so.”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왜 동의하지 않는지 한참이나 흥분하여 반박하는 그 모습이 선연하다. 좌중은 어느새 그녀의 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조용히 교수와 지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듣고 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으로 갈수록 어느새 입 다물고 듣기만 하도록 길들여지는 우리. 손들어 질문하기 않기, 자기 의견 ‘내세우지’ 않기를 습득해 버리는 우리. 누군가 수업 시간에 질문하면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진 않았는지? 손들고 질문하는 걸 튀거나 도드라진 행위로 간주하고, 은근히 싫어하진 않았는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기도록, ‘토 달지 않는’ 무난한 사람이 되고자 한 건 아닌지? 주변과 잘 ‘조화’하며 ‘둥글게’ 살아가는 것을 모범 사례화하지 않았는지. 그러면서 점점 자기 색깔과 의견 드러내기를 힘들어하게 된 건 아닌지?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안전한 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안전하기 못한 공간이라 여기기에 서로 눈치를 보며 입 다물게 되는 건 아닐까? 입 다물고 듣는 게 예의라고 익혀 온 나 역시, 일종의 침묵을 학생들에게 강요해 왔던 건 아닐까? 손들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질문하는 이가 없었던 걸로 봐서.


그 장면이 더 잊히지 않는 건, 지젤의 발언에 교수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며 답했다는 거다. 지젤은 ‘감히’ 그 교수의 말을 거역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게 ‘아닌’ 거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한 교수는 수긍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내겐 왜 그토록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까? 지극히 흔한 풍경이었을 그 모습이...


수업은 의견을 나누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실제 강의자의 독무대가 되기 쉽다. 일방적인 설교로 채워지는 순간, 학생들의 입은 저절로 닫힌다. 각자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 그 시간을 버티는 게 나으므로. 오슬로에서의 수업 풍경이 잔잔한 파문의 물결로 다가온다. 지젤의 이의 제기와 교수의 수긍으로 채워진 그 수업에서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외려 환기의 효과를 거두었다. 모두를 위해 좋은 경험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수업을 맛보았으니.


다시 내 수업으로 돌아간 어느 날, 미래의 어느 지젤이 ‘선생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 말을 수정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라고 열받아 흥분하지 않기를! 부디 바란다. 지젤을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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