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이란이라는 호의와 환대, 아이다

by 쏭스

무던하게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타입은 못 된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은, 그래서 좁고 깊게 친구를 사귀는 편이다. 그런 내게 서른 중반, 낯선 나라 노르웨이에서의 삶은 외로움을 체득해 가는 과정이었다. 용기 내어 새롭고 넓은 인연들을 맺기엔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런 내게 곁을 내어 준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기꺼이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의 속내를 귀담아 들어준 그들이 있었기에 외로웠던 한 시절을 어느 정도의 온기로 채울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나의 플랫 메이트, 아이다이다.


송스반 기숙사 첫날, 부엌에서 마주친 눈이 큰 아이. 큰 키에 뽀글 머리, 연한 갈색 피부를 지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범주에서는 볼 수 없는 용모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서남아시아를 여행한 적이 없었기에, 이란에서 왔다는 그녀의 말이 무척 반가웠다. 여행 좀 했다는 이들이 입 모아 칭송한 환대의 나라, 이란이라니!


우리는 부엌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음식을 소개하고 나누었다. 기쁘고 슬플 때, 화나고 우울할 때 음식으로 오고 가는 힘이 있다. 샤프란으로 노랗게 물들인 고슬고슬한 밥, 가지와 토마토를 뭉근하게 끓인 이란식 가지 스튜, 빨간 당근과 초록 시금치로 채운 알록달록한 김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왠지 모르게 아이다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눈물도 많이 흘렸다. 은근한 아시아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척하면 서로 알고 말이다.


아이다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이란에 간단다. 우리가 추석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듯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낸다. 일주일 넘게 대부분의 상점과 관공서가 문을 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유럽의 이방인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텅 빈 시공간이 된다. “아이다, 나 이란에 가도 돼?” “당연하지, 쏭. 환영이야! 나 역시 크리스마스를 피해 가족을 보러 가는 걸! 에스파한과 쉬라즈에 아는 지인이 있어. 너를 부탁해 볼게. 테헤란에선 우리 집에 놀러 와!” 벌써부터 환대라니! 역시 이란은 클라스가 다르다. 일종의 크리스마스 대탈출이자 모험이다. 한 번도 간 적 없는 서남아시아하고도 이란이라니!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사람과 문화, 환경이 다채롭다. 동아시아의 낯선 이에게 호의와 환대를 주저 없이 베푸는 사람들, 함께 말하고 먹고 웃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 외부와 차단되어 있기에 더욱 외부에 열려있는 사람들. 아이다 덕분에 이란이 몹시 가깝게 다가왔다. 아련한 추억의 나라로 남았다.


그런 아이다에게 어려움이 닥쳤다. 학생 비자 갱신이 안 된단다. 급기야 노르웨이로부터 떠날 것을 명령받았단다. 그 내막을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비자 갱신을 위해서는 본인의 노르웨이 계좌에 2000만 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 일종의 보증금이다. 내 한국 주거래 은행에서 SWIFT 코드를 넣고 노르디아 뱅크로 송금하면 며칠 안 되어 돈이 이체된다. 내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이란 유학생들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된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달러 거래가 차단되어서다.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이란 유학생들은 이중거래를 해오고 있단다. 노르웨이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다의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 은행 잔고를 증명하고, 이란 내 아이다의 부모님이 그 친구네 부모님께 돈을 갚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단다. 그런 방식으로 매년 학생 비자를 갱신해 왔으나, 미국의 제재가 심해짐에 따라 노르웨이 이민청에서 대대적 단속을 벌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자구책임을 여러 번 어필했지만 끝내 불허되어 출국 명령이 떨어졌다. 추방된 것이다. 그간의 불안정한 체류 속에서 노르웨이에서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어하던 그 모습이 선연하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안타까움이다. 단지 그 나라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하필이면 세계 초강대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나라여서 발생한 비극이다. 이리도 무력할 수 있다니. 한국에서 태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내게, 아이다의 이런 현실이 무척 비현실 같다.


외국에서 산다는 건 주기적인 비자 갱신을 통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고달픈 일이기도 하다. 특히, 자국보다 더 부자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에겐 더욱 고달픈 일일 수 있다. 불법 체류와 노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명에의 압박감이 은근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합법(?) 인간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다와 나는 일종의 압박감을 공유하는 사이였을 수도 있다. 계속 증명해야 했으므로. 단, 적어도 내겐 그 증명이 ‘귀찮지만 하면 되는 일’인 반면, 아이다에겐 ‘애시당초 차단된 일‘이라는 차이가 있다. 어쩌면 타국 살이란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켜켜히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절로 몸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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