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오해로 남게 된 인연, 에스

by 쏭스

그에 대한 비난을 속으로 퍼붓기도,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대면하여 풀 수도 없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사이. 에스의 존재는 유학 생활 내내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쿵하고 내려앉아 마음속에 똬리를 틀던 그 무엇. 정치적 지향과 관심사가 겹치는 그와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아팠나 보다. 모국어를 공유하는 사이엔 뉘앙스와 말투, 표정의 미묘한 지점까지 읽힐 수밖에 없다. 그래선지 큰 싸움이 없어도, 종이에 베인 손 마냥 스치는 말에도 따가웠다. 풀리지 않은 채 끝나버린,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설명하기 힘든 관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에스,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이 말이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던 걸까? 삐거덕거리던 관계는 그 후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짧은 목례와 함께 스쳐 갔다. 이런 장면들로 유추할 뿐이다. 어그러짐에 대하여.


상냥한 냉대와 친절한 무관심, 어색한 마주침은 서른 중반의 나를 속앓이 하는 사춘기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차라리 눈에 띄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 일상의 동선이 같았기에 너무 자주 마주쳐야 했다. 그때마다 굳어지는 신경. 붙잡고 이유를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목례마저 못하는 사이가 될까 봐.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듣던 그의 눈에 내가 진지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영어에 능숙하지도, 공부에 뜻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그래서 썩 도움이 되지 않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비칠 수도 있었겠구나 유추할 뿐이다. 공부보단 여행에 더 방점을 두듯 말하는 내가 미더워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일삼은 꼰대로 규정되어 버린 건 아닐까? 피해야 하는 한국인 목록 1호가 된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도 전에, 애초부터 싹이 잘려버린, 오해로 남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과 엮이며 내 마음도 불편해지는 것, 그 불편함을 계속 의식하게 되는 유학생활의 피곤함이 내내 지속되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간관계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막상 닥치니 쉽지 않더라. 관계란 결국 상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그러질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서로에게 있었던 거겠지?


쉽지 않은 사이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숙제. 숙고하게 되는 그 무엇, 에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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