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 시작 전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노르웨이, 브라질, 네덜란드, 미국, 네팔, 영국, 에스토니아, 체코, 일본, 중국,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스무 명가량의 동기들이 모였다. 앞으로 이 년 동안 석사 과정을 함께할 이들이다. 저마다 다른 피부색과 말투, 얼굴. 더없이 시원하고 밝은 오슬로의 여름, 도서관 앞 너른 잔디밭에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UN에서 일한 브라질 사람 지젤,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체코인 코나, 홍콩 보험회사에서 일한 일본인 니미코. 모두 영어를 잘한다. 나 빼고.
아... 어쩌지? ‘왜 눈가가 떨리기 시작하는 거지?’ 직사광선에 한참 노출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 차례가 다 되어가서 그러나? 도무지 잠잠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제2의 핀란드 면접이 되는 건가? 더 이상 유체이탈은 맛보기 싫은데... 이제 선글라스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여차저차 횡설수설, 소개를 마치긴 마쳤다. 어눌하기 짝이 없는 짧은 영어로.
과연 2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아니 버틸 수 있을까? 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온갖 상념만 남긴 체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이곳까지 온 내가 처음 현실의 벽을 맛본 순간, 유학은 결코 여행이 될 수 없음을, 현실의 높은 벽 맛으로 입 속이 퍽퍽해지는 순간이다. 나에 대한 의구심만 한가득 품은 체 바보가 되어버린 날. 여행자 마인드는커녕, 거주자라도 될 수 있을까 싶다. 아마도 가장 큰 장벽은 영어가 되겠지?
아이엘츠 6.5는 그야말로 입학 조건일 뿐, 수업을 따라가고 과제를 해내기엔 턱 없이 부족한 점수다. 눈에 띄게 뒤처진다. 동기들과의 영어 편차가 너무 크다. 브로큰 잉글리시로 말하는 나, 그런 나를 매번 마주해야 하는 저 너머의 나, 너무 초라하다. 점점 쪼그라든다. 영어로 하는 대화는 매번 흩뿌려지는 발화에 낙담해하는 나를 실시간으로 마주하게 한다.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화 속에 알아들은 척 웃으며 연기하는 내가 견디기 힘들다. 상대의 말을 절반도 알아먹지 못하면서 듬성듬성 들리는 단어로 그 뜻을 유추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과한 추임새와 리액션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내가 아닌 듯하다. 너의 말에 정말 몰입하고 있으며 이 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단 마음이었을까? 대강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대화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간간히 말도 섞어가며, 이해하는 척한다. 아... 이 얼마나 애달픈 일인가? 그것도 서른 중반에 말이다. 몸과 마음이 금세 지쳐버린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다. 학기 초 페이스북 그룹챗에 올라오는 여러 모임에 참석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과대표 프랭크가 주선하는 크고 작은 번개 모임에 점점 ‘없는 사람’,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영어 울렁증에 삼켜져 버린 사회 교사인 나는 점점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수업이 있는 블린던과 기숙사가 있는 크링쇼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겁 없을 때 올 걸! 되던 안 되던 부딪혀보던 그때에 올 걸! 한국을 벗어나 외국에서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그때 왔었어야 하는데! 십 수년이 흘러 이역만리에서 매일을 영어 듣기와 말하기로 채우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