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변곡점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선택으로 인해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된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생의 변곡점이라 생각한다. 그때마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도 있었다. 내 인생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변곡점 하나를 꼽으라면 'MBC 스키 캠프'에 간 일이다.
그 변곡점의 시작은 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공학 전공을 살려 IT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이 일을 하기에는 비전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미래 유망직종인 '보안 전문가' 꿈을 안고 '정보보호'를 전공하고자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막상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보니 정보보호 컨설턴트로서의 삶은 너무 피폐했다. 한 선배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과도한 업무로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 오십견이 왔다. 실무를 하는 선배들은 한결같이 보안업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공부는 재미있었으나 직업으로 갖기는 보안업무가 힘들어 보였다.
'역시 직업으로서 교직이 답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침 학부 때 부전공 대신 '정보컴퓨터' 교직을 이수해서 중등 정교사 2급 자격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하게도 대학원을 다니는 중에 휴학을 하고 임용고시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암울했다. 2004년 임용 시험부터 '정보컴퓨터' 과목 모집 인원을 급격하게 줄였다. 이때만 해도 교육청에서 시험 응시가 임박해서야 모집 인원을 공지했기 때문에 모험을 하고 1년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힘든 임용고시를 보고 난 후 나의 신분은 백조가 되었다.
여동생도 아버지와 함께 법무사 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얼어붙었고 아버지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권리금 사기까지 당했다. 아버지는 이 상황에서 서초동 1층 건물의 비싼 임대료까지 감당하면서 사무실을 유지하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본다고 판단하시고 과감히 개업을 포기하셨다.
우리 집은 순식간에 잘 못한 임대차 계약으로 어렵게 모은 큰돈을 권리금으로 잃었다. 갑자기 온 불경기에 다른 임차인을 쉽게 구하지도 못해서 빈 사무실 임대료로 200만 원 가까이 내고 있었다. 이렇게 집안에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한 명도 없이 다 큰 성인 5명이 암울하게 집에 모여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집에 있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 순간 내 눈에 띄었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MBC 스키 캠프 스텝 모집 공고였다. 스노우 보드 타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1~2달간 홍천 대명 비발디파크 리조트에서 숙식을 하면서 낮에는 맘 놓고 보드를 탈 수 있는 이 아르바이트가 맘에 들었다.
평소 같으면 집을 떠나는 아르바이트는 절대 허락을 해 주지 않으셨을 텐데 아버지가 허락을 해 주셨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는 우리 3남매를 모아놓고 말없이 100만 원씩 용돈을 주셨다.
나는 그 돈을 들고 MBC 스키 캠프에 들어갔다. 일을 하러 갔지만 통장 잔고에 100만 원이 있으니 쓰지 않아도 든든했다. 스키 캠프 본부 일을 하면서 MBC PD, 스키 전 국가대표 허승욱 선수, 성악하는 매니저, 마술사, 아나운서, 밸리 댄서, 모델 지망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났고 좋은 스승님도 만나 무료로 보드도 배웠다. 그리고 대학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를 오랜만에 대명 리조트 지하 편의점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 친구가 바로 지금의 신랑이다. 신랑은 그 만남이 운명이라 생각했다. 대학교 졸업 후 나와 만날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나간 대학 동기들 모임에서 나와의 만남이 계속 엇갈렸다고 한다. 그래서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포기하던 차에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운동을 너무 싫어했던 신랑이었지만 그 해 겨울은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한다. 주변 직장 동료들의 권유로 스키장 시즌권을 처음 사서 내려왔는데 나를 만난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 준 덕분에 인연이 되어서 친구에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평생 짝꿍이 되었다.
스키캠프가 끝나고 봄이 왔다. 시간이 흐른 만큼 집도 안정을 찾았고, 나는 대학원에 복학했다.
교직의 길은 가지 못했지만 도전했기에 미련은 없다. 지금 나는 대학원 전공을 살려 10년 넘게 정보보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선배들의 조언대로 호락호락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고생한 만큼 전문성을 쌓아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인생의 변곡점에 때론 울고 때론 웃으며 살고 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우연한 선택으로 일어나는 내 인생의 변화를 그저 즐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