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끄고 삶을 켜자'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TV가 사라지니 공허함이 그 자리를 메웠다. 집에 오면 TV부터 켜고 보던 습관이 너무 오래 몸에 배어버린 탓이다. 우연히 만들어낸 기분 좋은 빈틈을 메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TV의 전 방위적 자극 공격에 무뎌져버린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리는 데 음악만한 게 없다.
군것질 거리를 사기에도 부족한 용돈을 아끼고 아껴 카세트테이프 하나 살 돈이 모이면,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워크맨에 넣어 첫 곡의 전주를 기다릴 때의 설렘이란!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느낌적인 느낌’이 가끔 그립다. 그 기분 좋은 설렘을 너무도 오래 잊고 지냈다.
‘이런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지. 그게 음악이야’
- 영화 『비긴 어게인』 中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삶의 빈틈에 BGM(BackGround Music, 배경음악)을 깔아보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금 내 감정에 어울리는 음악을 미리 선곡해두고 집에 와서 틀면 그만이다.
음악은 집안의 차가운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건조한 마음에 습도를 높여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런저런 일들로 딱딱해진 마음은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뾰족하게 날 선 마음은 그 끝을 부드럽게 다듬어준다. 우리 집 전속 DJ를 오래 하다 보면 날씨에 따라, 가족 구성원의 기분에 따라, 각각의 상황에 따라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할지 노하우가 생긴다.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로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언제부턴가는 평범한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특별한 순간을 더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상황에 어울리는 BGM을 미리 선곡해 놓고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면 감동을 증폭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질 녘에 오름에 올라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볼 거라면 검정치마, 브로콜리 너마저, 넬처럼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악을,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고 싶은 날엔 다리에 힘을 실어줄 펑크나 헤비메탈을, 백패킹을 떠나 맥주 한잔하고 텐트에서 별보며 자는 밤이면 김광석, 9와 숫자들처럼 가사가 좋은 음악을 BGM으로 미리 선곡해 두는 식이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기도 한다. TV는 같은 방향을 보게 하지만 음악은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바라보고 있으면 대화를 하게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BGM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듯, 영화에 BGM이 없으면 금세 지루함을 느끼듯, 음악은 대화의 빈틈을 채워주고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하는 공간의 의미를 더한다.
때로 음악은 좋은 술과 같다. 좋은 술이 그 술을 마실 때의 추억을 소환하듯이 좋은 음악은 그 음악과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듣는 이를 데려다준다. 그 음악을 같이 들었던 사람, 내 앞에 펼쳐졌던 풍경, 그때의 분위기.
그때, 거기, 우리.
우리의 삶에 배경이 되어주었던 BGM 중에서 이렇게 특별한 추억을 머금은 음악들을 나는 인생의 OST(Original Sound Track) 라고 부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생 노래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당신을 상상극장으로 초대한다.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넬(Nell)의 ‘멀어지다’나 시네이드 오코너의 ‘Nothing compares to you'가 흘러나온다면?(요즘은 Nothing But Thieves의 ‘Lover, please stay’가 자꾸 마음을 시리게 한다)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와 사별하고 슬픔에 잠겨있는데,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들린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지 않을까?
이렇게 나만의 사연이 담긴 노래, 별 일없이 흘러가던 인생에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만들어줬던 노래들이 당신 인생의 OST에 올라갈 노래들이다. 좋은 OST가 좋은 영화를 완성시키듯, 누구나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울려 퍼졌으면 하는 음악들이 있을 것이다. 삶이 각자가 감독, 주연배우가 되어 만들어나가는 영화라면, 내 인생의 OST엔 어떤 음악을 넣을까?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