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너는 어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OLER Aug 14. 2017

쓴 맛 뒤에 찾아오는 달콤함의 유혹

당해낼 재간이 없다

<쓴 맛 뒤에 찾아오는 달콤함의 유혹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 괜찮아 사랑이야 中 -

어린시절 엄마와 자신은 의붓아버지와 형한테 수차례 폭행을 당하고, 정당방위 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붓아버지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형을 둔 ‘남 부러울 것 없이 돈 많고 잘생긴 스타작가’와 

사고로 4살짜리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딸들을 키우기위해 남편의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엄마를 둔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여의사’


여의사   “오늘 우리 콩가루 집안 구경한 기분이 어때?”

작가       “너희 집은 준수한 수준이야. 참고로 난 너무 집안 좋고 편안애들 보면 짜증나”

여의사   “짜증날 건 또 모있니 부러우면 또 모를까”

작가       “내가 옛날에 진짜 괜찮은 집 애를 만난적이있어 집안 좋고 화목하고”

여의사   “맑고 순수한 영혼 이었겠군”

작가      “응. 근데 그때 알았어 너무 말고 순수하고 긍정적 이기만 하니까 무지 지루 하더라고. 사람이 인생 단                  맛 쓴맛을 알아야 재밌지 단맛만 알면 진짜 매력없어”



무엇이든 겪어보지 않은 일을 100%에 가깝게 공감하기란 불가능하다. 상상과 현실은 ‘엄연히’ ‘명백히’ 라는 단어로도 모자를 정도로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의 격차 라고나 할까? 실제로 겪은 일을 표현할 때는 어떤 단어를 써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가. 기쁨이든 슬픔이든. 하지만 상상 속에 경험은 화려한 미사어구를 갖다 붙이고 나면 꽤 만족스러운 문장이 탄생 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표현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이기도 하고.  








커피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씁쓸함 뒤에 따라오는 끝 맛의 달콤함. 이 달콤함에 매료되어 빠져나 올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커피와 술을 인생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을 대변하는 이 두가지에 쓴맛이 배재된다면 어떨까. 계속해서 우리의 인생을 대변할 수 있을까? 맛을 처음 느끼는 혀끝에서 부터 목넘김까지 달콤함에 지배당한 뇌는 지루하다. 음식도 너무 달기만하면 물린다고들 하지 않는가. 


단맛 없는 쓴맛 없고 쓴맛 없는 단맛 없다. 상반된 두가지 맛의 결과는 행복을 낳는다. 모든 과정은 쓰고 힘들다. 그 시간은 결과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에 비해 너무나도 짧다. 환상의 나라가 있는 놀이동산에서 한시간을 기다리고 일분만에 끝나버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경험에 달콤함만 있다면 그것은 당연시 될것이고, 그것이 달콤한지 알 수 없다. 쓴 맛 없는 단 맛은 무 맛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땐 쓰지만 그 이야기를 나눌땐 달다. 가장 쓴 이야기가 가장 달게 느껴지듯 지금 내 이야기가 쓰다고 느껴진다면 반드시 단 맛이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인생은 또 이래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HAN VOLER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나 남의 공부가 재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