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이야기
여우비라고 했던 것 같다.
햇볕이 있던 날에 잠깐 내리는 비를.
깊이 지속되지 못하고
잠깐 내리는 비.
비가 내리는 건지
해가 뜬 건지 알 수 없는 이런 날씨를
교활하고 영리한 여우에 빗대어 여우비라고 한 모양이다.
실제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금세 그쳐 있었다.
아까규동을 먹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소산으로 향했다.
2009년도의 기억을 살려서.
그 때도 당장 도착했을 때는 입산이 통제 되었지만
아래 휴게소에서 잠깐 기다렸더니 규제가 풀려서
분화구에 접근할 수 있었더랬다.
아, 물론 이 날은 전혀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분화한지 바로 다음 날인데,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갈 수 있는 최대한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시내에서 인적과 차량 통행도 없는 음산한 도로를 지나
겨우 아소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드넓게 펼쳐진 도로를 지나고 보니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 뿐만이 아니었다.
업다운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내 머리 한구석에는 계속해서 근래
취미로 삼고 있는 싸이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클을 타고 이 곳에서 라이딩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에 여기에 자전거 끌고 한 번 와 봐야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선배는 웃으며 미쳤다고 했다.
"난 차로도 오기 힘들었어."
"뭐 한 번 마음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해보면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너나 해."
(그리고 나는 그 다음 해에 자전거를 가지고 후쿠오카 대신 오사카를 갔다.)
어쩐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이었다.
그쳤다 싶으면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 내리나 싶으면 또 다시 그쳐서 흐린 날씨였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언제 다시 분화할지 모르는 화산 근처를 다녀왔다.
-우리가 근처에 갔는데 화산 터지면 어떻게 해?
"그럼 뭐, 죽는 거겠죠."
-넌 뭐가 그렇게 간단해?
"에이,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게 되어 있잖아요.
아둥바둥해봐야 소용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아요. 우리."
-그래. 그러자.
낮에는 그렇게 올 듯 말 듯 하게 약올리던 비가
저녁에 되자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운전하는 사람을 잔뜩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충실하게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집중호우를 뚫고
겨우 하카타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밤 10시 즈음이었다.
아소에서 출발 했을 때가 6시 경이었다.
평소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중간에 식사를 했다손 치더라도
제법 시간을 많이 잡아 먹은 셈이었다.
"사... 살았어요."
-수고했어!
기절하듯 자고 일어난 아침은 카레라이스.
개인적으로 아침 식사를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오면 반반의 확률로 챙겨 먹곤 한다.
이 날 아침의 호텔 조식은 좋아하는 카레였던지라
놓칠 수 없었다.
우리가 지내는 숙소는 일본 전국 체인의 비지니스 호텔로
한국에도 그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제법 저렴한 가격에 1박 때마다 포인트를 줘서
10박이 되면 싱글 무료 숙박권을 주기 때문에
애용하는 편이다.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었기에 쇼핑 삼매경.
야끼사바나와 가츠나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것 같은데도
부산에 돌아오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아침엔 일본이었는데 순식간에 바다를 건너
나는 다시 한국 땅을 밟고 있었다.
마침 저녁 약속이 있어 데리러 와주는 지인을 기다리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또 다시 훌쩍 떠날 테지만 그 때
또 다른 사람과 다른 색깔의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게 되겠지.
그리고 다음 여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