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여행 #15

2015년 9월 이야기

by 한겨울
해가 뜬 하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우비라고 했던 것 같다.

햇볕이 있던 날에 잠깐 내리는 비를.


깊이 지속되지 못하고

잠깐 내리는 비.

비가 내리는 건지

해가 뜬 건지 알 수 없는 이런 날씨를

교활하고 영리한 여우에 빗대어 여우비라고 한 모양이다.


실제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금세 그쳐 있었다.


IMG_4733.JPG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규동을 먹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소산으로 향했다.

2009년도의 기억을 살려서.

그 때도 당장 도착했을 때는 입산이 통제 되었지만

아래 휴게소에서 잠깐 기다렸더니 규제가 풀려서

분화구에 접근할 수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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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젖은 도로

아, 물론 이 날은 전혀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분화한지 바로 다음 날인데,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갈 수 있는 최대한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IMG_4753.JPG 어느새 비는 그치고 완만한 경사로가 나타났다.
IMG_4748.JPG 아소산 휴게소에 도착하고 보니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였다.

시내에서 인적과 차량 통행도 없는 음산한 도로를 지나

겨우 아소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드넓게 펼쳐진 도로를 지나고 보니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 뿐만이 아니었다.

업다운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내 머리 한구석에는 계속해서 근래

취미로 삼고 있는 싸이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클을 타고 이 곳에서 라이딩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에 여기에 자전거 끌고 한 번 와 봐야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선배는 웃으며 미쳤다고 했다.


"난 차로도 오기 힘들었어."

"뭐 한 번 마음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해보면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너나 해."

(그리고 나는 그 다음 해에 자전거를 가지고 후쿠오카 대신 오사카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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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어쩐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이었다.

그쳤다 싶으면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 내리나 싶으면 또 다시 그쳐서 흐린 날씨였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언제 다시 분화할지 모르는 화산 근처를 다녀왔다.


-우리가 근처에 갔는데 화산 터지면 어떻게 해?

"그럼 뭐, 죽는 거겠죠."

-넌 뭐가 그렇게 간단해?

"에이,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게 되어 있잖아요.

아둥바둥해봐야 소용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아요. 우리."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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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그렇게 올 듯 말 듯 하게 약올리던 비가

저녁에 되자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운전하는 사람을 잔뜩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충실하게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집중호우를 뚫고

겨우 하카타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밤 10시 즈음이었다.

아소에서 출발 했을 때가 6시 경이었다.


평소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중간에 식사를 했다손 치더라도

제법 시간을 많이 잡아 먹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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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았어요."

-수고했어!


IMG_4771.JPG 호텔 조식!

기절하듯 자고 일어난 아침은 카레라이스.


개인적으로 아침 식사를 잘 챙겨 먹지 않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오면 반반의 확률로 챙겨 먹곤 한다.

이 날 아침의 호텔 조식은 좋아하는 카레였던지라

놓칠 수 없었다.


우리가 지내는 숙소는 일본 전국 체인의 비지니스 호텔로

한국에도 그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제법 저렴한 가격에 1박 때마다 포인트를 줘서

10박이 되면 싱글 무료 숙박권을 주기 때문에

애용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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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후 커피 한 잔은 필수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었기에 쇼핑 삼매경.


IMG_4791.JPG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 식사

야끼사바나와 가츠나베.


IMG_4802.JPG 부산항 터미널에서 바라보늘 저녁놀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것 같은데도

부산에 돌아오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아침엔 일본이었는데 순식간에 바다를 건너

나는 다시 한국 땅을 밟고 있었다.


마침 저녁 약속이 있어 데리러 와주는 지인을 기다리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또 다시 훌쩍 떠날 테지만 그 때

또 다른 사람과 다른 색깔의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게 되겠지.


그리고 다음 여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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