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과 해삼위(현,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을 떠돌다 보면 일제의 총흔(銃痕)을 만나게 된다. 여기, 한국의 총흔이야 아물 날이 있으랴?
바른 기운
수장은 개개인의 삶을, 치열한 보전의 전쟁을 승리하도록, 최소한의 피해, 나아가 하나의 피해도 없이 이끄는 것이 좋다. 하물며 아군과 적을 구분 못하고 자국민을 죽여 이룬 것을 쾌거라 참칭 할 때에는 이미 그것은 망국의 전조를 말한다. 망국을 살리는 자세 또한 그 위본, 위선, 거짓과 날조, 선동과 책략, 폭압과 공포를 조장하여 이루려 한다 하면, 그 망국 속에 살아남았던 수많은 정직한 살림들이 더욱 가혹함에 갇히고 또 비참해진다.
어용이란 단어가 등장할 시기이다, 어용이란 갖은 교활한 수단과 말로 많은 바른 인사들을 몰아세워 아프게 하던 족속들이지만, 큰 모습을 세밀하게 들여, 바라보는 어용이란 바로, 제 민족을 한심하다고 말하는 놈, 제 민족을 끓는 냄비라고 삿대질하며 오만하고 역겨운 잣대를 들이밀어 민족의 정기를 낮추어 놓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부라퀴 무리의 하수꾼들이다.
일제강점기는 일본이 나쁘고, 독재시대는 독재가 나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또는 어느 시대에나 늘 자신의 민족을 비하, 비관을 자라나게 하는 사람 싹수가 가장 나쁘다.
간혹 교와 당, 급과 계, 지식과 선진? 은 층층 계층을 이루고, 모이고 흩어지며, 교활한 거울을 꺼내 참회나 반성하는 듯 말짱한 위선을 비추며, 그럴듯한 연극판을 벌여놓고 이를 방패 삼아 쉼 없이 동족과 타인에 대한 맹렬한 저주를 퍼붓곤 하는데, 이를 다시 선망, 추구하는 무리들이 있어 큰 문제다, 특히 외국 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로 제 민족을 비하함은, 그 사특한 의미가 너무나 진하게 부상된다. 신이라는 존재가 존재한다면 그 혀를 사람의 귀에 밀어 넣어 어느 누구도 비천하거나 한심하거나 끓는 냄비로 만들거나 하는 둥, 그리 오래도록 민족성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리라.
부라퀴 무리들이 전쟁을 일삼아 그 전쟁 조달을 기회로 돈을 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룸(成, 盛)은 가득 참이요, 잃음(亡, 忘)은 비워진 빈 공간, 이곳 차고 빈 공간을 공평하게, 바르게 채워 넣으며 순환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저 무리, 온갖 그럴듯한 명분과 교리를 들고 판을 치지만, 이 자들은 모두 전쟁 부라퀴 수뇌의 손아귀 속에 머물고 있거나, 독립하지 못한 세뇌된 인간의 무지한 행위일 뿐이다.
자신이 없다, 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의 신성이 없다는 말의 다른 일컬음이다. 어떠한 신도 부르지 않으면 일부러 와 삶을 간섭하지 않는다. 신은 스스로에게 연결된 자기의 영혼일 뿐이다. 사람으로 나와 사람으로 살던, 성인으로 살던, 신을 향하여 살던 그것은 자유이며, 그것을 꺼내 어떤 외부, 어떤 타인과도 억지로 결부 지어서는 안 된다. 신과 그릇된 오만, '자신'을 빙자하며 음란하고 추한 나락으로 떨어진 머리통들을 보라.
삶은 일단의 목표를 향한 자신의 뼈아픈 실천과 줄기차게 나아가는 각오 지킴으로 완성되는 치열한 생, 풀이의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그러하니 이 사람마다의 스스로 결정해버린 신들 종류가 고래로 하나, 둘이었을까?
과학자들의 연구와 곡진한 사람들의 기도는 같다.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일, 비를 내리고 바다를 가르는 기도, 오로지 인간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사랑의 연구가 타당함으로 그 곡진한 기도에 나타나는 정의를 '이룩'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이룩, 도달, 해탈, 본연, 신성은 선택과 평가가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이 신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것으로 그 전능(?)을 보이지 않는가?
때때로 신은 자신 이외의 것, 외부로부터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간절한 기도가 맺은 생각(念)의 발현이다. 에너지의 지극한 과학적 발현 현상일 뿐이다. 엄마의 기도, 가족의 기도, 평안과 자유에 관한 기도가 도처에서 지속되었으므로 그 생각의 이룩과 발현은 마땅한 것이다. 이것을 틈 없이 방해하여 망치는 사특한 저 부라퀴 어용들의 존재들은 곧 인간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 사명을 두르고 그늘에서 낄낄거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