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를 향해 전진하던 바다사자. 심쿵.
안 가본 사람은 많아도 안 들어본 사람은 없는 곳. 이 표현을 11화에서 마추픽추를 표현하는 말로 썼어. 그런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곳이 갈라파고스야. 수식어를 하나 더 붙이자면 ‘나라보다 훨씬’ 유명한 곳.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에 속해 있어. 몰랐던 사람도 있을 거야.
갈라파고스는 고립된 섬을 은유하는 말로도 많이 쓰여. 육지와는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했음을 뜻하지. 그런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 데에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을 설계했다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 고립된 서식지 안에서 같은 종이지만 서식지 환경에 적응해 변화한 모습을 보면서 진화론을 정리했다지.
나는 과학적 이론을 확인하고픈 욕심 같은 건 없었어. 갈라파고스란 이름이 주는 끌림과 머나먼 섬에서 머물게 된다는 자체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할 온갖 동물들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갈라파고스로 향했지. 마추픽추나 우유니보다 먼저 찾은 남미였기에 나에게는 더더욱 설렐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여행지였던 것 같아.
에콰도르 수도 키토를 떠난 비행기는 Baltra 섬에 급정거하듯 착륙했어. 공항에서 Santa Cruz섬으로 가는 길, 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며 향한 그 길에서(정확히는 물 위에서) 바다사자를 처음 보며 갈라파고스 여행이 시작됐음을 느꼈지.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배를 탄 모든 이들이 눈앞에 나타난 바다사자에 감탄했어. 갈라파고스에 널린 게 바다사자임을 알기 전이었으니까.
Santa Cruz는 갈라파고스 내 여러 작은 섬들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해. 크루즈 여행객을 태운 배들이 만 하루 정도 머물러. 작은 섬으로 일일 투어를 오가는 기착지이기도 해. Santa Cruz에 도착한 그날 나는 하룻밤도 보내지 않고 크루즈 배에 탑승했어. 갈라파고스에 가기 전에 막연히 크루즈 여행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실행에 옮긴 거지. 약간 충동적이기도 했어. 다시 육지로 돌아갈 비행기 날짜는 정해져 있으니 하루 이틀 허비하다간 최소 5,6일은 걸리는 크루즈 여행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투어 에이전시 사무실을 갔을 때 “이 가격에 이런 여행은 오늘 아니면 힘들어. 마침 그 배가 Santa Cruz에 머물고 있고 오늘 밤에 떠나”란 마감 마케팅에 혹하기도 했고 말이야. 크루즈 여행이라고 해서 타이타닉 같은 거대한 배에 수영장 있고 밤에는 선상 파티 즐기는 럭셔리 여행만 있는 건 아니야. 2층 침대와 화장실이 딸린 방이 8개 정도 있고 식사를 하는 공간 정도가 전부인 작은 배를 타고 크루즈를 했어. 내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크루즈 여행이었지.
나는 방을 혼자 썼기에 배안에서 보낸 다섯 번의 밤을 침대 아래층에서 자기도 하고 위층에서 자기도 했어. 침대 위층엔 작은 유리창이 있어. 자다가 새벽에 눈을 떴는데 창밖으로 거센 물살이 지나가고 있더라. 파도 위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크든 작든 파도에 의해 흔들리는 배에서 지내다 보니 육지 땅을 밟아도 땅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어. 작은 배였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 중에 하나는 선상에서 일몰을 봤을 때였어. 태양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면 이내 어두워져. 그야말로 정직해. 해 뜨면 밝고 해지면 캄캄하고. 감동은 지극히 평범한 자연의 섭리를 새삼 체감할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그러한 섭리를 우리가 일상에선 잊고 지낼 때가 많다는 의미도 될 거 같아.
하루 종일 바다 위에 있으면서도 흔한 말처럼 '망망대해에 떠있는 듯' 하지는 않았어. 펄떡이는 생명체들을 끊임없이 만났거든. 바다사자, 물개, 펭귄처럼 수영이 가능한 친구들부터 군함조, 푸른발부비새 등 날아다니는 친구들 그리고 이구아나, 자이언트거북처럼 기어 다니는 게 편한 애들까지. 코앞에서 동물들을 보다 보니 내가 그들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들이 사는 데에 내가 잠시 놀러 온 기분이었어. 물론 실제 사실이기도 하지.
크루즈 여행이 끝나고도 사나흘을 더 갈라파고스에 머물렀어. 문득 들었던 생각은 정말 찰스 다윈은 이곳에서 진화론을 믿게 됐을까 하는 거였어. 내 눈에는 그저 하나님이 예쁘게 잘 만든 낙원 같았거든. 그래서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마땅히 적응을 한 걸 가지고 종이 변해갔다고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더라고. 동물들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이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완벽한 자연은 누가 정성 들여 만들지 않고서는 탄생이 불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물과 햇빛과 땅과 바람이 참으로 조화로웠거든. 물론 기독교 신자인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야.
갈라파고스의 매력은 자연 본래 모습을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는 데 있어. 갈라파고스란 이름값을 생각해보면 고급 리조트를 마구 지어대고 싶었을 것 같은데 가보면 거의 없어. 중심지인 Santa Cruz에도 작은 호텔이나 호스텔들이 대부분이고 더 작은 섬으로 가면 그마저도 찾기 힘들어. 갈라파고스 물가 자체가 다른 에콰도르 지역에 비해 확연히 비싸긴 하지만 그건 1달러 하는 콜라 한 병이 여기선 2달러 하는 얘기인 거고 지역 자체가 호화스럽단 인상을 주지 않아.
하긴 고급 리조트나 화려한 조명이 뭐가 필요하겠어. 자연이 이미 최고급인 걸. 갈라파고스를 추억하면 다른 여행지에 비해 좀 더 아련해지는 건 뭐랄까 지금까지 다녀본 어느 곳보다도 '죽기 전에 다시 가긴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많이 들어서인 거 같아. 갈라파고스로 가는 길이 특별히 험난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과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곳이라 아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달까. 멀게 보이기에 가슴 한켠에 자리한 그리움의 농도는 더 진할 수밖에 없겠지. 지금 그리고 다시 찾는 그날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