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볼리비아 티티카카에서 본 달.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 더 빛나.
야경은 많은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야. 서울 야경은 1년에 한 번 제대로 볼까 말까지만 여행지에 왔으니 야경을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지. 서울이나 도쿄처럼 쉽게 잠들지 않은 도시가 아닌 대다수 해외 도시들은 밤이 되면 고요해지니 야경을 보는 것 말고 별로 할 게 없기도 하고. 남미 여행하면 우유니(1화 참조) 마추픽추(11화 참조) 모레노 빙하처럼 장엄한 장관을 먼저 떠올리지만 여정 중 마주하는 도시의 야경 역시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인상적이야.
도착하는 순간 떠나고 싶었던 도시 볼리비아 라파즈에도 아경 명소가 있었어. 킬리킬리 전망대라는 곳이야. 아마존 지역인 루레나바케를 다녀온 날 밤 충동적으로 킬리킬리로 향했어. 컴컴하고 좁은 골목길을 택시로 타고 올라갔지.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어. 얼마간 서성이고 있으니 관리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어. 영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늦어 입장할 수 없다'는 말을 하더라고. 나 역시 영어는 아닌 말로 "뽀꼬.. 뽀끼.. 뽀르 빠보르"(잠깐만 보겠다는 의미로 건넨 스페인어. 뽀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um poco'가 조금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 같길래. poki는 아마도 '조금씩'. por favor는 영어로 please )"라고 했어.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문을 열어줬어. 엄청난 명성은 듣지 않았기에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꽤 예뻤어. 잠시지만 물끄러미 바라봤지. 다시 좁은 길을 내려가는 택시 안에서 라파즈의 야경이 예쁜 이유를 생각하니 좀 씁쓸했어. 라파즈의 야경이 예쁜 건 도시에 빛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도로에 가로등도 적고 화려한 조명을 빛내는 고층 건물도 없고, 집은 많지만 불을 켠 집은 많지 않아. 어둠의 면적이 크기에 그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이 유난히 빛나. 그래서 예뻐. 일본 오다이바나 미국 LA 야경이 아름다운 건 밝은 조명들이 빛나고 그 빛들이 서로 부딪혀 내는 빛이 화려하기 때문인 것과 반대인 거지.
라파즈뿐만이 아니었어. 야경으로 poco 유명한 남미 도시들은 대부분 어두움이 크기에 빛나는 야경들이야. 마추픽추를 가는 누구라도 들리는 쿠스코도 그래. 남미 도시 야경을 보러 가는 길 역시 대부분 비슷해. 좁은 골목길, 낡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어두컴컴한 동네를 지나가면 휑한 공터 같은 나와. 가난한 동네 위에서 바라다본 야경이 눈으로 보기에는 예쁘다는 얘기. 실제 남미 도시들은 부자들은 도시 낮은 곳에 집을 짓고 빈자들은 언덕에 집을 지은 곳들이 많아. 조금이라도 더 가난할수록 집은 높은 곳에 있지. 쿠스코 야경 명소는 '크리스토 블랑코'로 불리는데 전망대에 세워진 예수상을 지칭하는 말이야. 현재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시를 굽어내려다보는 따뜻한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실제 세워질 때는 식민지를 만든 정복자들이 현지인들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해.
야경뿐만이 아니야. 남미 도시 곳곳의 풍경은 낮에도 씁쓸함을 자아내. 페루 리마에서 산크리스토발 전망대를 오르면서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마주했어. 전망대에 가까워질수록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 흙더미 위에 집을 지은 풍경이었어. 비가 오면 당장이라도 토사와 함께 쓸려내려 갈 것은 집들이 빽빽이 흙더미 위를 채우고 있어. 집들 위로 누군가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겨. 리마는 신시가지뿐만 아니라 구시가지도 화려한 곳들이 꽤나 적잖은데 뭔가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본 듯했어.
난 여행하면서 도시보다는 자연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부터 도시는 장엄한 자연을 마주하기 위해 들르는 곳처럼 여기기도 해. 때문에 도시의 풍경들을 별다른 준비 없이 만날 때가 많아.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어. 여행은 그저 즐거워야 할까. 화려한 뒤에 쌓여 있는 누군가의 힘겨운 삶은 관심을 가져야 할까. 과도한 감정이입 또한 그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미 도시에 다시 가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이겠지만 그들의 삶을 더 들어보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