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추픽추에 가면 누구나 보고 찍는 그 모습.
누구나 살다 보면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지'라며 후회할 때가 있어. 이불킥 하게 만드는 기억들. 나 홀로 여행은 일상에선 몰랐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내.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이야. 멋진 모습과 찌질한 모습 모두 내보이게 되고 그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너무나 잘 기억하게 만드니까.
페루 마추픽추. 안 가본 사람은 많아도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여행지야. 여행 예능에서도 자주 다뤄주지. 남미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마땅히 가야 하는 곳. 나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기대를 안고 마추픽추로 향했어. 마추픽추에 가는 누구라도 들르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라는 곳은 철저하게 상업화됐어. 설악산 하나만 보고 사는 강원도의 작은 관광마을 같달까. 식당에서 파는 피자는 '잉카 피자', 거리에서 파는 커피는 '잉카 커피', 길지 않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끊임없는 권유받는 마사지도 '잉카 마사지'야. 그들이 잉카에 기대는 건 당연히 마추픽추가 있어서야.
그런 마추픽추이기에 난 제대로 보고자 했어. 이를 위해 두 가지를 계획했는데 하나는 마추픽추에 이틀 연속 가는 것이었고 하나는 와이나픽추를 가는 것이었어.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산 봉우리야. 매일 입장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해. 입장료도 꽤 비싸. 마추픽추에 가는 첫째 날에 와이나픽추에 가는 걸로 예약을 했어. 드디어 그날 마추픽추를 지나(마추픽추에 대한 감상은 잠시 후에) 와이나픽추로 들어가는 입구로 갔어. 근데 내 예약 번호를 확인하더니 입장할 수 없다는 거야. 이유는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났다고.
"여기 봐봐, 오늘 날짜 맞잖아."
"잘 봐봐, 네가 입장하는 시간은 아침 8시 반이야. 그 시간은 이미 지났잖아."
"시.. 시간이 있었어? 그냥 오늘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입장 시간이 나누어져 있어."
"............................."
"............"
"나 못 가?"
"응 못 가."
그때였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한 마디가 내 입 밖으로 나온 건.
"제발 나 들여보내 줘. 나 아시아에서 왔어."
이게 뭔 소린가. 한국에서 왔어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왔다니. 어렵사리 예약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마추픽추를 하늘에서 조망한다는 기대, 이대로 갈 순 없다는 억울함이 뒤섞인 감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나 아시아에서 왔다'라니. 찌질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민망한 내 감정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사실 100%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어. 허나 나한테는 뭐랄까, 스스로 잘 몰랐던 비굴한 면모를 들킨 기분이랄까. 40억 아시아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쨌든 저 말을 들은 직원은 "그럼 다음 입장 시간에 들어가"라고 했어. 나는 알았다고 하고 기다렸는데 입장 시간이 되자 그 직원이 자기 상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얘기하는 거야.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상사는 '안 된다'고 하는 거 같아. 직원 표정이 난처했거든. 때마침 그 순간 문은 열렸고 나는 정말 입장 못하게 될까 봐 "나 들어갈게"라고 말하고 도망치듯 들어가 버렸어. 또 한 번 찌질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었지. 이게 참 뭐랄까, 핑곗거리가 없는 나약함인 게 예를 들어 패키지여행을 갔는데 가이드가 시간이 모자라니 새치기를 하라고 해. 그러면 나는 절대 새치기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새치기를 한다는 자기 위안이 생기잖아. 근데 와이나픽추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비굴해지고 얍삽해진 거야.
사람이 참 철이 없는 게 뭔 줄 알아. 저렇게 구차하게 들어갔는데 올라가서 또 감동은 엄청 받았다? 당시 아버지께 보낸 메시지를 보면 "아버지, 저는 마추픽추를 보면서 인간의 의지를, 마추픽추마저 작아 보이게 만드는 안데스 산맥 그 광활한 자연을 보며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라고 썼어. 사람이 참 간사해. 그때 회개 기도는 왜 안 했나 싶네.
사실 저 표현의 이면에는 마추픽추가 생각보다 작았다는 감상이 깔려 있어. 마추픽추에 가면 입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우리가 사진에서 봤던 마추픽추 모습이 짠 나타나. 난 당연히 '아 이제부터 마추픽추가 시작되는구나. 자 가자'라고 설레고 있는데 거기서 끝이야.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마추픽추의 전경이 마추픽추의 전부야. 그다음부터는 그냥 처음에 봤던 '돌로 지은 도시'를 좀 더 자세히 구경하는 거야. 그런 상태에서 산봉우리와 수풀에 폭 안겨 있는 마추픽추를 봤으니 자연의 광대함을 새삼 절감한 것 같아. 어쩌면 부족한 감동을 꼭 보충하고 싶었는지도.
감히 평할 건 아니지만 마추픽추는 마케팅의 승리라는 생각도 들어. 잉카 왕조도 동시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였어. 막 돌로 돌 깨서 집 짓고 사냥하고 그런 시대는 아니었단 말이야. 근데 적잖은 여행객들이 '잉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예스러운 건지 마야 문명이랑 헷갈리는 건지 아주 오래전 지어진 불가사의 취급을 해. 이건 본받을 점일 수도 있어.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이미지를 각인시켜서 훌륭하게 관광 상품화한 거니까. 마추픽추 덕분에 페루 쿠스코의 박물관과 유적지는 늘 사람들이 붐벼. 솔직히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은데 말이야.
돌이켜보니 내 기억 속 마추픽추는 나를 닮았네.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존재이고 커다란 세상 속에서 보면 미약한 무엇. 미약하더라도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빛나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마추픽추가 새삼 일깨워주는 사실일지도. 수백 년 전에 그리고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