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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Nov 22. 2020

똥 좀 만지면 어때

내 똥은 빼고

이 글을 올리는 2020년 11월 기준 39개월 된 아들과 20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난 누군가의 똥을 만진다는 게 엄청 대단한 일인 줄 알았다. 어릴 적에는 내 똥도 만지기 싫어서 채변 검사 때 엄마에게 부탁하곤 했다. (보는 앞에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누군가의 똥을 만지는 게 큰일이 아닌 게 됐다. 지금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똥을, 덩어리든 찌꺼기든, 만지게 되는 것 같다. 2020년 11월 현재 주로 만지는 똥은, 아직 기저귀를 차는 둘째의 것이다. 둘째 딸이든 첫째 아들이든 이제 덩어리를 만질 일은 드물다. 찌꺼기를 만지는 게 대부분이다. 두 볼기짝 사이에 낀 그거.


아이들은 아직 똥에 대한 거부감보단 호기심이 크다. 많은 '응가송'과 책에 나오듯 아이들은 자신의 똥을 아쉬움 속에 보내준다. 똥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려는 아이에겐 반드시 똥을 보여줘야만 한다. 이젠 익숙해졌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실 지금도 마냥 괜찮은 건 아니다. 아이 앞에서 그런 척할 뿐. 아이가 정답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에게 아빠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을 순 없기에 나 역시 웃으며 아이와 똥의 헤어짐을 주선해준다.


똥을 만진 기억은 가끔은 무용담으로 한 때는 좋은 추억으로 포장되다가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내가 네 똥까지 치우면서 키웠는데...' 이러면서.


내 아이는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아이들은 인생의 다시 못 올 전성기인 것 같다. 조금만 크면 부모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미운 짓 하면 밉게 보이는 아이일 텐데 지금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서 즐거움을 얻는다.


인생에서 그토록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동시에 많은 이에게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시기는 없을 것 같다. 똥 잘 싼다고 박수받고 칭찬 듣는 시절이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있을까. 눈 앞에 내 똥이 반갑고 헤어질 땐 아쉬운 순간이 살면서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이토록 찬란한 시간을 정작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잘 얘기해줘야겠다. 똥을 좋아한 적 없다고 잡아떼면 어쩔 수 없이 똥 얘기는 빼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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