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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Nov 24. 2020

최고의 과일은 블루베리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이 글을 올리는 2020년 11월 기준 39개월 된 아들과 20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자식들에게 과일을 많이 먹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게 있다. 과일주스가 설탕 덩어리라는 말을 들을 때면 생과일은 많이 먹여도 괜찮을 거란 믿음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 과일을 먹는 방법은 단순했다. 사과나 배는 물로 헹구듯 씻어내는 게 전부였다. 배는 껍질을 늘 벗겨 먹었지만 사과나 복숭아는 껍질째 먹기도 했다.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는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귤이나 오렌지는 물로 헹구는 것조차 안 한 적도 많다.      


아이에게 주는 과일은 그럴 수 없다... 고 한다. 아내는 원래 과일 씻는 법을 잘 알고 있던 건지, 과거에도 그렇게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아주 철저하게 과일을 ‘세척’한다. 식초가 그렇게 유용한 물건인지 과일 씻기 통해서 새삼 느낀다.      


아이를 하나만 키울 때는 과일을 씻고 깎는 건 주로 아내 몫, 먹고 난 뒷정리는 주로 내 몫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난 손재주가 부족한 터라 과일을 깎으면 껍질에 붙은 채 버리는 게 너무나 많았다. 자연히 칼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졌다.      


아이가 하나 더 생기고 둘째가 오빠 못지않게 때로는 더 과일을 잘 먹는 시절이 되다 보니 내가 과일을 깎을 때도 종종 생겼다. 그걸 정하는 건 주로 첫째다. 많은 아이들처럼 내 아들에게도 ‘과일은 먹고 싶지만 꼭 엄마랑만 지금 해야 되는 다른 뭔가'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과일을 씻고 깎는다.      


못하는 걸 하는 건 누구에게나 고생스러운 일이다. 그 일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란 생각이 들지만 의문을 제기할 순 없는’ 처지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니 옛날보단 과일 깎는 실력이 늘긴 했다. 세척하는 기술은 늘고 말고 할 게 없다. 그냥 시간이 걸릴 뿐.  


과일을 깎고 나면 주방에는 껍질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먹고 나면 식탁 아래에는 뭉개진 덩어리가 널려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 마음속 최고의 과일이 바뀌었다. 원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과일은 복숭아다.      


지금은 블루베리다. 식초 떨어뜨린 물에 담가 씻어내는 과정만 빼면 먹고 나서 정리할 게 거의 없다. 작은 크기 덕분에 아이들이 잘 흘리지도 뱉어내지도 않는다. 껍질도 없으니 음식물쓰레기도 없다. 집에서 음쓰 담당은 나. 내가 정작 몇 점 먹지도 못한 과일 때문에 어젯밤에 비워 정성스레 말려둔 음쓰 통이 한 번에 가득 차버리면 뭔가 헛헛하다.      


블루베리는 내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블루베리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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