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럽긴 하지만 계속 물어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3월 기준 43개월 된 아들과 24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수년 전 육아에 지친 한 엄마가 전한 얘기. 고된 일상과 부대끼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들이 다가와 물었다.
"엄마 꿈은 뭐야?"
아이는 유치원에서 미래 꿈이 뭔지 얘기를 하다가 문득 엄마의 꿈도 궁금해졌나 보다.
엄마는 순간 당황한 채 머뭇거려야 했다고.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간다. 엄마가 느꼈을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 아들이 종종 묻는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어요?"
아들은 묻지 않아도 자주 자기가 되고 싶은 걸 얘기하곤 한다. 한동안은 요리사였다.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게 멋져 보였나 보다. 자신 있게 요리사 되겠다 말하는 모습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칭찬하자 아들 스스로 뭔가 뿌듯했나 보다. 그리곤 아빠가 되고 싶은 것도 궁금해진 것 같다.
아들은 밥 먹다 말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난 멋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짐짓 머뭇거렸다. 당황한 모습을 오래 보일 수는 없었기에 급하게 꺼낸 답은 "멋진 시윤이 아빠가 돼야지"였다. 에이 참 대답 참 별로다. 아쉬움과 함께 홀로 상념에 빠지는 건 예정된 수순.
그러게. 아빠는 뭐가 되고 싶을까. 아니 뭐가 돼야 할까. 되고 싶은 게 없지 않고 없다고 말하기도 싫지만 또 그래서 뭐가 되고 싶냐고 다시 묻는다면. 멋있게 말하려 하지 말고 있는 대로 말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멋있게라도 말하고 싶은 거야. 교육상 그렇잖아. '시윤이 아들의 할아버지'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별로야. 건물주라고 해도 아들은 이해를 못할 거고.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도 잘 전달되지 않을 거 같고...
나의 친형은 내 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들을 키운다. 2년 전쯤 명절 조카는 자기 아빠에게 대뜸 "나 아빠처럼 될 거예요" 했다. 형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응? 아빠처럼 된다고? 아니야 아빠보다 훌륭한 사람 돼야지"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자녀에게 '그러지 말라'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자신보다 잘되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지만 엄마아빠를 동경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부정적 대답은 피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복잡미묘한 생각 탓이었을까. 며칠 전이다. 새로 들어간 유치원에 아들과 함께 가는 길. 아들은 대뜸 "나 아빠처럼 멋진 사람 될 거예요" 했다. 난 "진짜? 아빠처럼 멋진 사람 될 거야?"라며 질문을 되묻는 방식으로 살짝 피해 갔다. 아들은 "그럼요"라며 되받았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아들이 나에게 "아빠 꿈은 뭐예요?"라고 물을 그날이. 예상하고 있으니 대답도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말이 아니라 아들딸이 보는 내 모습 자체가 아이들에게 이상향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멋진 답도 준비 못했고, 아이들이 닮지 않길 바라는 내 모습도 한가득이다. 그래서 당장은 꿈을 묻지 않고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아들이 고맙다. 아들의 답은 정해져 있을 때가 많으니까. '로보카 폴리'를 볼 때는 로이(아들이 폴리), 뽀로로를 볼 때는 포비(아들은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은 뽀로로), 겨울왕국을 볼 때는 크리스토프(아들은 항상 엘사).
그렇다. 아들이 '아빠는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은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서 아빠는 조연임을 전제하고 묻고 있다. 언젠가 '아빠 꿈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빠가 주인공이라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하기 때문일 거다. 아빠처럼 멋진 사람 되겠다는 아들에게 말해줘야 할 아빠의 꿈. 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