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겨울왕국 스포가 들어있음
이 글을 올리는 2021년 3월 기준 43개월 된 아들과 24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육아 때 국면 전환을 위해 겨울왕국 1편과 2편 VOD를 소장 중이다. 4살 언저리 아이를 키운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아이들은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영화에 빠져든다. 그렇게 겨울왕국을 종종 틀어주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실 하나. 영화를 틀어주고 집안일을 하다가 엔딩 크레딧까지 멍하니 보고 있는 아이를 보다가 화면을 보니…. 등장인물 리스트에서 안나가 제일 먼저 나온다. 1편과 2편 모두 안나 엘사 순으로 소개된다. 겨울왕국 주인공이 엘사라 여기는 한국인들의 인식(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니)과는 다른 것이다.
쓸데없이 진지해져서 과연 겨울왕국 주인공은 안나인가 엘사인가 혼자 잡상을 시작했다. 주로 설거지나 청소하면서.
일단 드라마 작가들이 말하는 주인공의 요건을 보자면 주인공은 엘사다. 드라마 작가들에게 주인공을 누구로 설정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극이 누구의 감정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 이 말에서 엿보이듯 작가들이 말하는 주인공의 요건은 ‘처음과 끝이 다른 인물’이다. 못된 도련님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 개과천선하는 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종일관 착하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다. 쉬운 예로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은 현빈인가 하지원인가 묻는다면 정답은 현빈이다. 까칠한 재벌남이 가진 것 없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변화하는 게 극의 뼈대다. 일반적 대중은 하지원이 현빈을 사랑하는 것보다 현빈이 하지원을 사랑하는 게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 여긴다. 그 어려운 걸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겨울왕국의 엘사는 처음에 차갑게 세상을 등지려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통해 마음씨 따뜻한 여왕이 된다.
하지만 겨울왕국이 영화임을 생각하면 안나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영화는 한 번 입장한 관객은 2시간 동안 강제로 붙잡아두는 특성을 가졌다. 짧은 시간에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 아닌 항상 정의롭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히어로가 주인공에 적합할 수도 있는 것. 이런 경우 주인공은 내적 갈등이 아니라 외적인 시련을 주로 겪는다. 정의로운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람보나 다이하드 주인공이 쉬운 예다. 1편을 보면 사실 안나의 분량이 엘사보다 많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며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에 처하는 것도 안나다. 노래도 사실 ‘렛잇고’를 제외하면 안나가 부르는 노래가 훨씬 많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사랑은 열린 문’, ‘나 태어나 처음으로~’ 등. 게다가 극 중 유일하게 로맨스를 펼치는 인물도 안나다.
흥미롭게도 1편에서 보인 엘사와 안나의 역할이 2편에서 정확히 맞바뀐다. 엘사는 시종일관 책임감 있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히어로 주인공의 모습을 보이고 분량도 많다. 반면 분량은 줄었는데 마지막에 변화하는 인물은 여왕이 되는 안나다. 1편에서는 안나의 도움을 받아 엘사가 최종 해결을 했고 2편에서는 엘사의 도움을 받아 안나가 최종 해결을 한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앞서 분명 얘기했다. 쓸데없이 혼자 진지해져서 잡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급 자기계발서 모드로 얘기하자면 드라마로 보면 우리 모두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시작과 끝이 같은 인물은 없으니까.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래서 결론적으로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묻는다면 엘사라 말할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아들이 자기가 엘사란다. 엄마가 안나고 아빠는 크리스토프고 동생은 울라프. 졸지에 울라프의 멍에를 쓰게 생긴 딸내미는 보이는 공주 캐릭터마다 다 엘사란다.